따뜻함을 찍는 사진관

오지랖 넓은 아저씨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by 모두미

한동안 다른 사람들의 삶이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이 내게 그들의 이야기를 숨기려 했다기보다는 내가 눈을 감아버린 것이 맞을 것이다. 내 삶에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문제들에 신경 쓰다 보니 주변의 이야기를 듣는 귀는 자연스레 막히는 듯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따뜻한 공기가 너무 오랜만에 내게 전해졌다. 바로 오늘 말이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80821073107_1_filter.jpeg 작은 공간에 놓여져 있는 하나의 소파와 하나의 카메라

삐거덕~ 딸랑딸랑. 나는 작은 사진관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여권 사진 찍으러 왔는데요.”

“네.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세요.”

무더운 바깥 날씨 때문인지 작은 사진관 안속은 에어컨을 틀어 놓았지만 그렇게 시원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인도 비자를 위한 증명사진을 찍으려고 찾아온 사진관이었다.

우리 앞에는 이미 사진을 찍고 기다리는 엄마와 두 아이가 있었다.

사진관 아저씨는 마우스로 아주 바쁘게 그러면서도 능숙하게 컴퓨터에 보이는 아이의 얼굴을 만져주고 있었다.

아이들의 사진을 받은 엄마는 아주 만족스러운 듯 웃음 지으며 인사를 하고 나갔다.


우리 차례다.

“누구부터 찍을까? 막내부터?”

아저씨는 아이들의 사진을 여러 번 찍으셨다.

‘증명사진인데 저렇게 많이 찍나?’ 난 의외로 정성들여 찍으시는 아저씨를 보며 생각했다.

“자. 얼굴을 살짝 내려 볼까? 그래 하나 둘 셋! 이번에는 웃음을 살짝 지어 봐요. 활짝 웃으면 안 되고.”

“어 이번에는 눈을 좀 크게 뜨고 자 하나 둘 셋! 눈을 크게~!!”

신나게 사진을 찍는 아저씨 덕분에 어색한 분위기가 덜해졌다. 그러는 사이 할아버지 한 분과 엄마와 아들이 들어왔다. 우리 사진이 정리되는 사이 아저씨는 할아버지 사진을 다시 찍었다.

“어르신. 찍습니다. 하나 둘 셋! 또 한 번 더요. 하나 둘 셋! 아이고. 얼굴 표정 변화가 너무 없으시네. 어르신 한번 웃어 보세요. 밝게요. 입은 열지 마시고요.”

줄곧 무표정으로 앉아계시던 할아버지는 그제야 아주 옅은 미소를 보이셨다.


한국에 들어와서 모두가 바빠 보여서 정말 필요한 말들만 하고는 웬만해서는 말을 섞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무표정으로 바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만 봐왔던 터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신경 쓰는 사진기사 아저씨를 보는데 외계에서 온 사람 같았다. 따뜻한 나라 외계인 정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아저씨의 노력에도 별 표정의 변화가 없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아서였다.

“할아버지는 어디 가세요?” 여권 사진을 찍었으니 해외로 나가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난 그 당연한 것을 물었다.

“어. 가까운데. 일본.” 할아버지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 했다. 그냥 여행을 가는 것이라 했다. 할아버지가 한마디를 하시자 사진관 아저씨는 신이 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요즘은 일본을 많이 간다는 둥 일본 음식이 중국 음식 보다는 좀 더 맛이 있다는 둥 주저리주저리 이야기 하시는 사진관 아저씨. 아저씨는 꼭 어색한 사진관을 따뜻한 분위기로 만들겠다고 제대로 마음먹은 따뜻한 나라 외계인 같았다.


남편이 통화를 하느라 사진을 빨리 찍지 못 하는 바람에 아이들과 나는 다음 팀 사진 찍는 것 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온 아들과 엄마.

“어디 여행 가세요?” 나는 당연히 여권사진이라 생각하고 물었다.

“아니요. 우리 아들 수능 볼 때 필요한 증명사진을 찍는 거예요.”

“와. 그러시구나. 정말 중요한 사진이네요. 사진도 잘 찍고 시험도 잘 보면 좋겠네요.” 엄마는 아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네. 꼭 그러면 좋겠어요.”

그러는 사이 다시 사진관 아저씨의 기분 좋은 너스레가 시작되었다.

“여기 약간 여드름 있는 거 내가 빼준 거예요. 어디 보자. 왼쪽 눈이 살짝 작은데 조금 크게 해줬습니다.” 아저씨는 마술 같은 포토샵 사이로 마우스를 움직여 대며 멋진 증명사진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고. 잘생겼네. 우리아들.” 엄마는 아들의 사진을 보며 말했다. 말 속에 사랑과 애틋함과 걱정을 듬뿍 섞어서 말이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80821073921_2_filter.jpeg 문 앞에 그려져있는 카메라가 참 정겹다

나는 작은 사진관에서 너무 오랜만에 사람 냄새를 맡았다. 은행이나 서비스 점에서 듣는 그런 의무적인 친절의 말이 아닌 진짜 사람과 사람사이의 따뜻한 대화 말이다.

요즘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예의이고 배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책없이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가는 이상한 눈 흘김을 받기 십상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작은 사진관의 오지랖 넓으신 아저씨처럼 남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것이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이 사진관에서 30년간 일했다는 아저씨.

아저씨의 사진관은 아주 오래 된 마법의 사진관이 아닐까.

어떤 모습이든 포토샵으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교정해 주는 사진관.

오는 사람들 한명 한명의 삶에 있는 피곤과 걱정들을 아저씨의 능수능란한 마우스 움직임으로 없애고 소소한 행복을 채워주는 마법의 사진관 말이다.


아무래도 난 오늘 사진관 아저씨에게 사람들의 따뜻함을 볼 수 있는 여유를 선물 받은 것 같다.


오랜만이다. 이 사람 사는 냄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춘기를 맞이하는 엄마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