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상처들이 회복되면 좋겠다.
옷장 구석에 오랫동안 모셔두었던 실과 바늘을 꺼냈다.
하얀 색깔부터 빨강 노랑 아주 짙은 남색까지 10개가 넘는 실 몽당이가 보였다. 안 쓴 지 오래돼서 먼지도 많이 있었고 실끼리 뭉쳐져 있는 것도 있었다.
어렸을 적 엄마는 빨강 초록색 천으로 꾸며진 탄탄한 실 바구니에 여러 종류의 실과 바늘들을 넣어 놨었다. 실 바구니를 열면 손 떼 묻은 작은 거울이 있었다. 그리고 빨간색 벨벳 천으로 감싸진 솜에는 핀부터 여러 크기의 바늘까지 촘촘히 꽂혀 있었다.
바구니 속 전체가 빨간 천으로 되어있던 엄마의 귀티 나던 실바구니.
그러고 보니 옷장 밑에서 꺼내온 내 실과 바늘들은 5킬로짜리 포도 상자 속에 볼품없이 대충 놓여 있었다. 실과 바늘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여보. 이 양말 좀 꿰매 봐. 이거 속옷 뜯어진 거 보이지? 이것도 좀 꿰매 주고. 그리고 당신 저 양산도 좀 꿰매야 하지 않을까?”
“뭐야. 이건 그냥 버리는 게 낫지 않나? 아니 내가 귀찮아서가 아니라 요즘 양말도 속옷도 많은 세상에......”
버리는 것이 너무 쉬운 나인가 싶어서 말끝을 흐렸다.
그래서 오늘은 몇 년 만에 꺼내는 것처럼 보이는 실 바늘 박스를 꺼냈다.
큰 아이는 다음 주부터 있을 시험공부를 한다고 바닥에 누워서 책을 보고 있고 둘째는 벌써 꾸벅이면서 졸고 있다. 그리고 나는 우아하게 앉아서 바느질을 시작했다.
남편의 구멍 난 양말도 속옷도 꿰맸다. 하나하나 떨어진 부분을 꿰매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뭐야. 꿰매고 나니까 새것 못지않네.’ 내 녹슬지 않은 바느질 실력에도 기뻤지만 몇 년은 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속옷과 양말에 기분이 더 좋았다.
그리고 양산을 넓게 폈다. 반짝이는 하늘색에 마지막 부분이 검정 망으로 마무리되어 있는 양산이었다. 인도의 뜨거운 땡볕에 얼굴이 타들어간다고 호들갑을 떨며 거무칙칙한 우산을 쓰고 다니는 나를 위해 남편이 사준 선물이었다. 양산대와 천을 맞대어 놓고 조심스럽게 꿰맸다. 바늘이 뚫고 지나간 천 사이로 작은 빛줄기가 들어올지도 모르지만 시장에 앉아서 우산을 고치시는 인도 우산 장인이 된 듯한 기분으로 우산 수리를 마무리했다.
그러고 보니 참 버리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었다. 입었던 옷들을 버리는 아파트 재활용품 박스 안에는 입을 만한 옷이 차고 넘치고 구멍 난 양말을 꿰매서 쓰기보다 마트에 가서 1000원짜리 새 양말을 사는 것이 쉬운 우리 내 세상이다. 물론 인도는 그 흔한 것도 없어서 구멍 난 옷을 떨어질 때까지 옷을 입고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고쳐 쓰기보다는 버리기가 더 쉽다.
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복잡한 인간관계에서도 쉽게 버리고 싶다는 유혹을 많이 받는다.
서로의 신뢰에 작은 구멍이 났을 때. 바쁜 생활 속에서 따로 시간을 내어 앉아 색깔에 맞는 실과 크기에 맞는 바늘을 준비해서 그 구멍 난 부분을 꿰매는 노력을 하는 것이 구차한 것처럼 느껴졌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조금만 싸우더라도 세상에 종말이 올 것처럼 친구 사이를 회복하려고 하던 어린 내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을 겪으면서 상처받기도 하고 상처 주기도 하면서 지칠 대로 지친 어른이었다.
구멍 난 속옷처럼, 구멍 난 양말처럼 복잡한 인간관계는 버려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 바느질 몇 분으로 멀쩡하게 변신한 양말과 속옷이, 그리고 눈부신 하늘빛을 품어내는 저 양산이 내 눈에 자꾸 들어온다.
어쩌면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멀어질 만한 사람들도 다시 오랫동안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친구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