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람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가 깨어질 때 겪는 아픔이었다.
“이야기 잘 끝났어요?” “아니.” 남편의 얼굴은 심각했다. 남편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틀어진 부분을 해결하고 싶어 했지만 오히려 상처만 받은 얼굴이었다. 누군가를 신뢰하고 있다가 그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할 때 그만큼 마음이 불편할 수가 없다. 남편은 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여보. 그때 뭐 살 것 있다고 했죠? 잠깐 부탄 갔다 와요.”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부탄으로 향했다. 남편이 며칠 후에 출장을 가는데 만나는 지인들의 선물을 사기 위해서였다. 자동차로 한 시간 반 걸리는 부탄은 아주 깨끗한 나라다. 내가 사는 곳에는 없는 한국 분위기의 카페도 있고 우리가 그리워하는 한국 라면도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부탄은 복잡한 인도의 삶에서의 일탈을 의미했다. 그래서 힘들어하는 남편에게도 그 일탈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부탄 국경 즈음에 도착했을 때 교통 체증이 심했다. 누군가 다음 날 있는 페스티벌 준비를 위해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결국 우리는 차를 돌려 한적한 곳에 주차하고 걷기 시작했다. 꽉 막힌 자동차들 사이에 서서 기다리느니 걸어가는 것이 낫다는 남편의 결론 때문이었다.
오전에 비가 왔었는지 움푹 파인 길에는 물이 고여 있었고 걸어가기 힘들 정도로 질척이는 길을 남편과 내가 걸었다. “하필이면 오늘 통이 넓은 인도 바지를 입고 와서는 걷기가 영 불편하네.” “그러게. 당신 바지는 꼭 치마 같네.” 인도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검은색 치마바지는 최근 인도에서 꽤나 유행하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바지를 잡아 올리고서는 성큼성큼 지저분한 도로를 걸어갔다.
깔끔하지 않은 인도의 길을 걸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배워야 하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있다면 지금 남편과 나는 그 감정들 중 하나를 배우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고.
남편은 복잡한 인도 길을 빠르게 걸어 나갔다. 나도 남편의 뒤를 따라 인도의 복잡한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질척이는 길을 걸어가서 그런지 어느새 슬리퍼를 신은 남편의 발 뒷부분에 진흙이 튀어 지저분해져 있었다. 나는 오히려 지저분한 길을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위로받았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불편한 감정이 우리가 걷는 이 길과 같다면 남편과 나는 잠시 그 길을 걸어가는 것뿐이니까. 걸어가고 또 걸어가다 보면 분명 좋은 길이 나올 테니까.
한참 걷던 남편이 내게 말했다. “안 힘들어?” 나는 남편을 보며 이야기했다. “아니. 내가 또 걷는 거는 잘하잖아.”
부탄과 인도의 경계를 알리는 웅장한 용무늬 출입문이 보였다. ‘아~ 부탄이다.’ 나는 남편을 보며 함박웃음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