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한복의 의미는?

나는 한복을 입기로 했다.

by 모두미

“성민아 현민아. 오늘 한복 입자.”

“왜요? 덥잖아요.” 성민이였다. 부끄럼도 많고 남들의 시선을 많이 생각하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첫째 아이 성민이의 대답은 나의 예상대로였다. 아~ 요놈을 어떻게 설득시킨다.

“엄마. 진짜요? 좋아요. 빨리 입어야지.” 현민이었다. 성민이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현민이는 남들의 시선을 은근히 즐기는 아이였다. 몇 달 전 인도 이발소 아저씨가 현민이 머리를 바가지 씌워 놓은 것처럼 잘라 놓았을 때도 현민이는 버섯 머리라며 즐거워했으니 성민이와는 달라도 정말 달랐다.


그렇게 아침 내내 한복을 입으려는 자와 한복을 입지 않으려는 자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엄마. 진짜 더워요. 바깥에 나가봐요. 이 날씨에. 아~~ 말도 안 돼요.” 사실 성민이 말이 맞았다. 날씨는 후덥지근했고 교회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잠시 설날에 한복을 입을까 하고 흔들리던 차에 현민이가 말했다. 그것도 한복을 입고 도령들이 쓰던 그 복건까지 쓴 채로 말이다.

“형아. 내가 지금 나갔다 왔는데 날씨 괜찮은데? 엄마. 입어도 되겠어요.” 나는 사실 성민이의 말을 더 믿었다. 요즘 이곳 날씨가 긴 한복을 입기에는 아직 꽤나 더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한복을 입고 싶었다.


“성민아. 봐봐. 인도 사람들은 매일 마다 자기들의 전통 의상을 입고 다니지. 야~ 근데 한국 사람으로 써 일 년에 두 번도 한복을 안 입어 주면 안 되지. 한국인의 자존심이 있지. 그리고 한국에 가면 추석이나 설날은 사람들이 한복 많이 입고 다녀. 인도에 살면서 우리도 한복 정도는 입어 줘야지.”

사실 한국에서 추석이라고 한복 입고 다니는 사람을 많이 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성민이를 설득시키려면 이런저런 이유가 필요했다.

“아. 엄마 현민이 한복은 검은색에 흰색이지만 내 한복은 분홍색이란 말이에요. 애들이 놀리면 어떡해요?”

“아이. 그러면 이렇게 이야기해. 이게 한국 전통 스타일이야.”

성민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렇게 한복을 입었다. 땀이 줄줄 흐를 것 같았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더울 것을 예상하고 부채를 들고 가서 그런가? 나름 견딜 만했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는 학교 교회인데 아이들이 우리 한복을 보고는 예쁘다고 여러 번 인사를 해왔다.

인도 흙길과 한복을 입은 아이들 모습이 너무 잘 어울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성민이가 이야기했다.

“애들이 내 옷이 예쁘대요. 그리고 좀 뚱뚱해 보인다고 했어요. 나 이거 계속 입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 주도 입을 까요? 아님 오늘 오후에도 계속 입을까요?”

성민이는 많이 말라서 몸이 드러나는 옷을 싫어했다. 그래서 펑퍼짐하니 몸이 튼실하게 보일 수 있는 한복이 꽤나 마음에 들었나 보다.

현민이는 하루 종일 조선시대 도령님처럼 머리에 복건을 쓰고 다녔다. 한복 입는 것이 저리도 즐거울까.


그러고 보니 아버님은 명절이 되면 꼭 한복을 입으라고 하셨다. 결혼 초 그러니까 이십 대 중반 정도였나 보다. 매번 명절마다 고리타분하게 한복을 입으라는 아버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날은 한복을 입고 모두 구리 한강 공원으로 나들이를 가자고 하셨다.

집 안에서 한복을 입으라는 것도 싫었는데 아니 조선시대도 아니고 한복을 입고 공원으로 가자니. 나는 입이 주먹만큼 나와서는 툴툴거리면서 한복을 입었다.

코스모스 가득한 공원에서 한복을 입은 가족은 우리뿐이었다.

‘거봐. 아무도 안 입고 있잖아. 무슨 사극 찍는 것도 아니고 아버님은 왜 자꾸 한복을 입자고 하신담.’

나에게 한복은 그랬다. 조금 촌스럽고 입고 다니기엔 부끄러운 그저 옛날 옷이랄까.


그러던 내가 이제는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자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해외에 살다 보니 한국이 그리웠다. 비행기에서 주는 한국 신문만 봐도 설레었고 가끔 인도 문구점에 한국 이름이 있는 물건들만 봐도 행복했다.

또 자신들의 전통 옷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인도에서 오래 살다 보니 내 나라 한국의 문화에 대한 사랑도 더 커졌다.


해외에서 한복은 그리운 한국 내 조국을 기억하게 하는 옷이었다.

인도에서의 한복은 인도의 전통 의상인 사리에 못지않게 고운 색채와 아름다운 품위를 풍기는 한국의 자존심이었다.


“여보. 아버님이 한복을 입으라고 이야기할 때는 그렇게도 싫더니 이제는 내가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자고 하는 거 있죠. 재밌지?”

내 말을 듣던 남편이 말했다.

“다 때가 있나 봐.”


그랬다. 이십 대 중반의 나는 한복을 입기 부끄러워하는 나였고 삼십 대 후반의 나는 한복을 자랑스럽게 입고 싶어 하는 나였다.

나는 그런 때를 지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아버님을 이해하지 못했듯이 어쩌면 아이들은 한복의 소중함을 이해하지 아직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 나라의 소중함을 아직은 이해하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때가 되면 아이들도 분명 한복 입기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한국인이라는 것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내가 한복을 입고 싶어 하는 것처럼.


-> 하필이면 한복을 입었던 날 비가 왔답니다. 한복 치마를 움켜잡고 조심해서 걸어온다고 했건만 한복 치마는 이미 진흙들이 튀어서 지저분해져 있었어요. 결혼할 때 비싸게 주고 맞춘 실크 한복 아니겠어요. 인도 시골 마을에 살고 있어 드라이클리닝은 기대할 수 없어서 아주 조심스럽게 손빨래를 했습니다. 하지만 비싼 실크 한복은 인도 물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봐요. 아주 조심스럽게 색깔이 번지고 구겨져서 다려도 펴지지 않더군요. 13년 잘 입은 한복이 망가졌지만 슬프지 않았어요. 그저 다음에는 물빨래 막 해도 되는 한복을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물빨래할 수 있는 한복이라면 좀 더 많이 입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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