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메일을 주고받던 친구와 내가 그립다
매일 적어도 하나씩 글을 쓰자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오늘도 자리에 앉아서 곰곰이 어떤 글을 쓸까 고민했다. 사실 내 다이어리에는 글감들을 써 놓는 페이지가 있다. 지나가다가 본 장면이나 내게 잔잔한 감동을 준 이야기들을 써 놓고 시간이 될 때 글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다이어리를 펼치고 전에 쓰고 싶었던 글감을 하나 선택했다. 그런데 생각만큼 쉽게 써지지 않았다.
‘그래. 이럴 때는 메일도 한 번씩 체크해 주고 그래야지’ 나는 인터넷을 열었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메일 주소가 몇 개 되는데 오늘은 왠지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메일을 확인하고 싶어 졌다.
구 메일을 열자 여러 가지 SNS에서 오는 자동 메일들이 잔뜩 와 있었다. 간혹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했을 때 오는 메일들도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마우스를 밑으로 밑으로 내리는데 옆쪽에 옛날 내가 만들어 놓았던 메일함이 있었다.
‘곰팅이!!’
생각해 보니 내 단짝 친구의 메일을 모아놓은 거였다. 왜 그 친구가 곰팅이라고 불렸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곰팅이처럼 귀엽게 생겨서였는지 곰돌이 푸를 유난히 좋아해서 그런 별명이 붙여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친구는 곰팅이로 통했다.
간호학과를 같이 다니던 우리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우리 둘 다 문과를 다니다가 뜻하지 않게 성적에 맞춘다고 간호학과를 선택한 자들이었고 그래서 빡빡한 간호학과 공부를 하기엔 우리의 감성이 너무 살아있었다. 공부가 어렵다고 생각할 때 면 우리는 훌쩍 버스를 타고 동대문과 명동을 누비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또 둘 다 가정 사정이 좋지 않아서 학교에서 매일 아르바이트를 했다. 친구는 대학 영상 미디어 팀에서 그리고 나는 대학 강당 방송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매 방학 때면 집에 내려가지 않고 대학 사무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다음 학기 용돈을 벌곤 했다.
친구가 아르바이트로 있는 곳에서 영상을 만드는데 내가 연기를 한 적도 있었고 내가 방학 동안 일하는 방송실 사무실을 어떻게 하면 잘 청소하고 정리할 수 있는 지를 그 친구가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다른 어떤 친구들보다도 가까웠고 항상 함께였다.
‘정말 아직도 이 메일들이 남아 있을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폴더를 열었다.
신기하게도 정말 메일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친구에게 받은 메일들은 75개나 있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친구가 보낸 메일을 눌렀다. 그때 한창 유행이던 베지테리안 쏭, 우유 쏭 등을 보내 준 메일이 보였다. 메일의 많은 것들이 전자 카드로 노래와 함께 친구가 쓴 편지가 천천히 올라가는 형식이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때 그 노래가 들리지 않았다. 메일 멘 위쪽에 “곰팅이 님이 따뜻한 편지를 보냈습니다”라고만 쓰여 있었다.
난 친구가 보낸 메일들을 하나씩 눌러보았다. 그중에 특히 눈에 띄는 메일이 있었다.
‘2001. 6. 25’
오늘 일은 이미 끝났겠네요... 오늘은 많은 일을 하셨다고요..
수고하셨어요... 힘든데 아무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군요...
오늘 날씨가 더웠군요..? 집에서 그냥 바깥을 내다보며 날씨가 정말 좋은 줄만 알았는데.
오랜만에 이 노랠 들어봐요.. 예전에 ‘맛있는 청혼’ 드라마 할 때 참 좋아했던 노래였는데..
그때 드라마에서 이 노래가 나왔었거든요.. 전 이제 과외를 가야 해요..
정말 가기가 싫고 귀찮긴 하지만 돈을 벌어야지요...^^
나한테 이렇게 좋은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는 모양이에요..
남한테 기대는 게 익숙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친구한테도 내 말을 다 못 하는 모양이에요..
정말 미안해요.
오류라고 뜨는 메일의 화면 사이로 음악 없이 천천히 올라가는 친구의 편지는 한 편의 시와도 같았다. 오후에는 과외를 하고 밤늦게 까지 편의점 알바를 하며 강의 시간에 있는 쪽지시험을 준비하는 친구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밤늦게 아르바이트를 끝나고 혼자 집으로 가는 친구를 걱정하던 내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대학 마지막 학기 수학여행에 못 참석하는 사람은 손들라고 이야기했을 때, 살며시 든 내 손 옆으로 친구의 손이 있어서 고마웠다. 왜 수학여행 안 가려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교수님 앞에서 우리는 아르바이트를 안 하면 안 된다고 함께 이야기할 그 친구가 있어서 고마웠다.
메일의 마지막은 2006년도 6월이었다.
‘싸이월드-우리 일촌 맺어요.’
나는 마지막 메일의 제목을 읽고 피식 웃었다. 우리가 메일을 그만 주고받기 시작한 것은 싸이월드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메일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그때 우리는 많이 어렸고 또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힘들었던 그 추억의 페이지마다 내 친구 곰팅이가 있어서 그 기억은 따스하고 때로는 설레기까지 하다. 클릭 하나면 소식이 전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도 오늘은 메일을 주고받던 친구와 내가 그립다.
그때의 아픔이 그리운 것인지, 그때의 행복이 그리운 것인지, 그때의 젊음이 그리운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아련한 20살의 친구에게 메일을 보내고 싶다.
--메일을 열어 놓고 친구의 이메일을 읽다 보니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는지 딩동 하고 알람 소리가 나더라고요.
그 소리가 얼마나 설레던지 옛날 메일로 돌아가 볼까 고민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