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모르게 갖는 편견
사람들이 북적인다. 발가벗은 듯 팬티만 입고 있는 꼬마 아이의 손을 잡고 종종 걸음 치며 오는 엄마들, 하얀 룽기(인도 남성 전통의상-주로 시골에서 많이 입는 옷)를 두르고 느릿느릿 팔자걸음으로 걸어오는 할아버지들, 무슨 잔치라도 구경 온 것처럼 신이 난 청년들. 그렇게 사람들이 모였다. 조용하던 마을이 시끌벅적해 지고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전에 없던 이 광경은 바로 한국에서 온 대학생들과 NGO의 도움으로 진행되는 무료 진료 덕분이었다.
나지막하게 서 있는 건물 하나를 의지해서 또 대나무를 세워서 만든 파란 천막은 사람들의 그늘막이 되어 주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어린아이로부터 할아버지 까지 힌두교, 모슬렘교, 기독교, 모두가 모였다.
'징' 하고 울리는 스켈링 소리에 사람들은 깜짝 깜짝 놀라면서도 평생 처음 하는 이빨 청소에 상기된 얼굴들이다. 썩은 이를 뽑으러 온 사람들은 입을 꽉 다문 체 진료실 밖을 나가면서도 뒤에 줄 선 사람들에게 뭐라 뭐라 눈짓을 한다. 아마 생각 보다 덜 아프다고 아니면 생각 보다 꽤나 아프다고 그들만의 눈빛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루 종일 통역을 해 가며 사람들을 줄 세우고 혈압을 체크하는 대학생들과 의사 선생님들. 치위생사들의 물리치료사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들의 봉사를 아는 지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늘어났고 하루에 1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다.
특별한 순서가 없어서 그렇지 이곳에서의 가장 큰 의료 잔치였다.
그날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봉사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난 그들의 모습을 내 사진기에 담고 또 마을 사람들을 보고 인사를 나누다 집에 들어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른다.
작은 키에 가녀린 몸을 가진 젊은 애기 엄마가 집 앞에 있었다. 그녀는 의사 선생님이 보냈다면서 아기를 보여 주었다. 간절한 그녀의 눈빛 아래에는 작지만 또랑또랑한 아기가 있었다.
이제 10개월 정도 된 여자 아기. 그 아기는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기였다. 일반적으로 아기들은 3달 정도만 지나면 목을 빳빳하게 들 수 있지만 이 아기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목을 가누지 못했다.
아이를 진료 하던 의사 선생님이 우리에게 보냈다는 뜻은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태어날 때 실수로 아기의 목에 무리가 갔는지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로 태어났는지 우리는 알지 못했다. 그저 그 아기에게는 어려운 삶 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밖에는.
NGO에서 오신 한 의사 선생님과 함께 아기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이 아기가 치료가 가능할까요?”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봐서 CT를 찍어봐야 알겠지만 사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의사 선생님과 짧은 대화에서 아기의 상황이 그리 좋지 만은 않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잠시 후 다시 아기 엄마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16살 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 아기 엄마는 이미 안타까운 상황을 받아들여서 인지 아니면 아이에 대한 애정이 덜한 것인지, 자신의 아기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얼굴에 큰 변화가 없었다. 어쩌면 아이를 돌보기에는 아이 엄마도 너무 어린 탓일는지 모른다. 16살 밖에 안 되는 어린 엄마에게 이런 힘든 상황이라니.
아기가 정상이 아니라고 태어난 후로 웃은 적이 거의 없다고 어린 엄마가 이야기 했다.
정말이었다. 우리가 아이의 눈 가까이로 손을 움직여 봤지만 눈동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 시각에 까지 문제가 있는 것인가. 어쩌면 아이가 정상 지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제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시각장애와 지적 장애까지 가지고 있는데다가 목 까지 가눌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었다.
정상이 아니라면 적어도 이정도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치료에 의미가 없다고. 치료를 받아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없다면 도움을 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차라리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더 좋겠다고.
함께 있던 사람들 그 누구도 서로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우린 무언 속에서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꼭 그 아이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그 아이의 삶을 판단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아이가 다른 누구보다도 도움이 더 필요한 아이 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아이와 엄마를 보낸 후 계속 그 아이의 얼굴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우리의 도움이 이 아이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돕고 싶었다.
비록 아름다운 세상을 보지 못하더라도, 그래서 큰 웃음을 사람들에게 전하지 못하더라도, 그 아이가 목을 가눌 수만 있다면, 걸을 수만 있다면, 아기의 살아갈 세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혹여나 우리의 바람대로 되지 않아 아이의 목을 가눌 수 없고 걸을 수 없더라도 나중에 조금 더 자랐을 때 자신을 위해 노력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적어도 그 아이의 힘든 삶에 작은 용기가 되지 않을까?
아이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서야 우리는 그 아기의 집을 방문하기로 결정을 했다.
10개월 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몸집도 작고 목도 가눌 수 없는 이 작은 천사에게,
세상을 볼 수 없어 제대로 웃어 보지도 못한 이 가엾은 아가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관심이라도 표현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난 후.
우린 서슴없이 그 아이의 집을 찾아 가기로 했다.
이제는 그 아이를 돕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가? 하는 필요 없는 고민 따윈 지워 버리려고 한다.
그리고 아이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희망이란 선물을 품에 안고 말이다.
이 글을 쓰면 서도 이미 내 마음은 아이의 집에 가있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에게 달려가야지. 그리고 희망을 선물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