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친구들이 소포를 가지러 우체국에 간다고 했다. 나 역시 시내에서 장을 봐와야 했던 터라 그 친구들과 함께 시장으로 향했다. 우체국과 시장은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우체국에 내려서 나는 시장으로 향했다. 축제가 며칠 남지 않았기 때문에 거리에서는 대나무를 사용해서 멋진 전광판 아치를 만들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기념해서 쇼핑을 하고 있었다. 인도 사람들은 축제 때 가족들에게 새 옷을 사준다. 그래서 축제가 가까워지면 다른 가게들보다 옷 가게에 사람들이 넘쳐난다. 나는 좀 더 빨리 가기 위해 골목길을 택했다.
축제 준비로 바쁜 시장 중앙로
한 가족이 오토바이를 타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간다. 아빠와 엄마 사이에 앉은 아이는 장난감 하나를 새로 산 듯했다. 물총 같아 보이는 그 장난감을 보고 또 보면서 행복해하는 아이가 혹여나 떨어질까 봐 엄마는 아이를 꼭 안았다.
좀 더 걸어가다 보니 오래된 할아버지 세탁소가 나타났다. 구수한 웃음을 가진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고 손자 같아 보이는 두 청년이 옷을 정리하고 셔츠를 다리고 있었다. 아마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손자들에게 일을 시켜 놓고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진흙으로 만든 아궁이 화롯불 위에 무거운 쇠 다리미가 빨갛게 달구어지고 있었다.
드디어 시장이 나왔다. 축제날이 다가온다고 예쁜 꽃 모양을 한 열매를 파는 사람들도 보였고 야채도 사람들도 더 많아 보였다. 그리고 모두가 상기된 모습이었다.
나는 항상 가는 야채 가게 아저씨에게 갔다. 야채가게라고 해 봤자 천막 아래에서 야채를 잔뜩 펼쳐 놓고 파는 곳이었다. 가지에는 벌레가 없는지 감자는 싱싱한지 나는 꼼꼼하게 체크하며 야채를 사고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서 야채를 고르는데 누군가 나를 툭 친다.
하시나 아주머니였다. 우리 집 근처에 자주 와서 풀을 잘라 가던 하시나 아주머니. 말을 잘하지 못해서 항상 아주머니와의 대화는 ‘어~어~어’ 하면서 시작해서 ‘어~어~어’ 하면서 끝나곤 했다. 우리 집 근처에 올 때면 풀을 자르는 아주머니이지만 시장에서는 구걸하는 마을 친구로 변해있다. 부스스한 머리에 웃는 입가로 가끔 침이 흐를 때도 있지만 그 웃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처음 시장에서 만났을 때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했더니 하시나 아주머니가 제일 먼저 내게 한 행동은 그녀의 한 손을 내민 것이었다. 풀을 자르는 모습만 봤었던 터라 돈을 구걸하러 다니는 모습이 내게는 낯설게 다가왔다. 하지만 마을 친구인데. 그래도 정이 있지. 하면서 가지고 있던 돈을 조금 줬다. 하시나 아주머니는 그때부터 시장에서 나를 만나면 아주 오랜 친구를 만나는 듯이 반가워했다. 나 역시 다른 구걸하는 사람들보다도 하시나 아주머니를 더 반갑게 맞았다.
항상 그렇게 웃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일까? 그날은 야채를 사는 나를 기다리지 못하고 달려와서 내 등을 툭 친 것이었다. 나는 그런 하시나 아주머니가 너무 귀여웠다. 야채 가게 아저씨도 하시나 아주머니를 잘 아는지 아는 척을 한다.
축제가 가까웠으니까 하면서 항상 주던 금액보다 조금 더 주었다. 하시나 아주머니는 매번 그랬던 것처럼 받은 돈에 키스를 하고 돈을 쥐었던 손으로 내 머리에 얹었다가 툭하고 친다. 내가 조금 더 돈을 줬다고 고마워서 그랬는지 그날 아주머니는 활짝 웃는 얼굴로 좀 더 세게 내 머리를 쳤다. ‘툭’
그녀의 행동은 인도 사람들이 축복을 빌어주는 행동이다.
나는 그 모습이 좋아서 아주머니를 만나는 게 좋았다. 그녀의 손길이 정말 내게 축복이 전해주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녀가 뻐드렁니를 드러내고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 순간만은 그녀의 행복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만 같았으니까.
나는 하시나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안띠! 슈퍼 슈퍼!!(아줌마. 최고 최고!!)”
그러자 주변의 아저씨들도 같이 소리친다. “슈퍼! 슈퍼! "
행복한 “슈퍼”소리가 시장을 가득 메우는 것만 같았다. 하시나 아주머니는 수줍어하면서 그렇지만 행복한 미소를 나에게 선물하고 시장의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지금처럼 그녀의 삶 속에서는 적어도 '슈퍼 하시나 아주머니', 그녀가 주인공이기를 바랐다.
눈부신 햇빛이 하시나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난 눈부신 햇빛을 보는 것인지 그 순간만은 주인공이 된 하시나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보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