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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Nov 12. 2019

넌 좋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구나

주저 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사랑꾼이 되고 싶다

매일 오후에는 2시간씩 인도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친다.

가까운 학교에 있는 아이들인데 한 시간은 통학생들 10명을 가르치고 나머지 한 시간은 기숙사생들을 10명 가르친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나면 시간이 후딱 하고 지나가 버린다.


그날도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을 때였다. 작은 교실 안에 10대의 키보드를 놓고 가르치기 때문에 키보드 소리만 해도 충분히 시끄러운데 그 소리 사이로 익숙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 우리 고양인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앞문을 열었다.

우리 집 고양이 라씨였다.


“어머. 라씨야. 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우리 집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오피스까지는 100미터 정도 되는 거리이다. 그런데 새끼 고양이 라씨가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이 오피스에 오다니. 그것도 내가 가르치는 피아노 교실 바로 앞에서 야옹거리면서 기다리고 있다니. 분명 점심 먹고 피아노 교실로 향하는 나의 뒤를 따라왔을 것이다. 나는 라씨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피아노 교실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러자 라씨는 야옹거리면서 피아노 치는 학생들 무릎 위를 올라갔다 내려왔다 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또 싫어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데 자꾸 라씨가 그런 학생들 다리 위에 올라가니 아이들이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지르기까지 한다. 결국 나는 라씨를 집에 데려다주고 오기로 결심했다.

피아노 치는 교실을 나서면서는 라씨를 내 품에 안고 걸어 나갔다.

“라씨야.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나 따라온 거야?” 라씨는 아무 말이 없다.

오피스를 나서서 집으로 향하는데 따스한 햇볕이 라씨와 나를 비추고 있었다. 그러자 라씨가 그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내 품이 좋아서 인지 따스한 햇볕이 좋아서 인지는 몰라도 라씨는 계속 그것도 아주 큰 소리로 그르렁거렸다.


“라씨야. 그렇게 좋아? 넌 좋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구나?”


나는 그런 라씨의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싫지 않았다.

고양이는 좋으면 반사적으로 그르렁 거리는 소리를 냈다. 우리 집 개 심바도 좋으면 꼬리부터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 사는 반려동물들은 밀당을 전혀 하지 못하는 숙맥들이었다. 연예를 잘하려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잘 살아남으려 한다면 나의 속마음을 모두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많이 들었었다. 그래서 감추고 또 감추며 좋은 것들만 보여주며 살아가는 나였다. 때론 남편에게 조차도 내 감정을 감추며 좋아도 좋지 않은 척, 싫어도 싫지 않은 척을 하며 살 때도 많았다.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가 내 별명을 ‘정가식’이라고 지어준 적이 있었다. 물론 자기는 자칭 ‘이간사’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정가식’. 내가 워낙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만 대해서 나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친구가 붙여준 이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언제부터인가 웃고만 있었다. 특히나 새로운 사람들이나 친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남편과 한파탕 말다툼을 하고도 시댁에 들어갈 때면 웃으며 어른들을 대했던 내 모습을 생각해 보면 정말 정가식이 맞긴 맞았다. 하지만 그런 수많은 웃음 속에서도 진짜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즉 정말 사랑을 표현해야 할 곳에서 나는 많이 서툴렀다.


라씨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 짧은 100미터 길을 걸어가는 내내 그르렁 거리며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고 있었다.

‘주인님이 좋아요. 따뜻한 햇볕이 좋아요. 지금 이 순간이 좋아요.’

어쩌면 라씨는 내게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라씨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내 속 모습을 다 보여 주는 것에 어색했던 나를 생각했다. 라씨의 모습이 이렇게도 사랑스럽게 보인다면 나 역시 가까운 가족에게 남편에게 내 속에 있는 사랑을 다 표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랑해요. 여보.”

“사랑해. 성민아. 현민아.”

“사랑해. 엄마. 아빠.”

“사랑해요. 어머님.”


나도 라씨처럼 주저 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사랑꾼이 되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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