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울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by 모두미

일요일이었다. 평소처럼 아이들 등교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이어서 아침 식사도 늦게 했다. 여유롭게 음악을 들으면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집 뒤쪽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이곳에는 재활용을 하는 곳도 없고 음식물을 따로 수거해 가는 곳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집 뒤에다 구덩이를 파고 남은 음식물들이나 야채 껍질들을 버리곤 했다.

아침이면 여러 종류의 새들이 우리 집 음식물 쓰레기 구덩이를 방문한다. 그래서 아침부터 새소리를 듣는 것은 아주 평범한 일상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오늘 새소리는 평소에 듣던 소리보다는 좀 더 과격했다. 좀 더 애절했다.

나는 힐끗 집 뒤쪽에 있는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식 구덩이 바로 옆에 있는 빨랫줄 위로 수많은 새들이 줄에 앉아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뒷문으로 나가봤다. 아이들이 자주 이야기하던 마이나 새였다. 인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마이나 새는 잘만 교육시키면 앵무새처럼 말도 배울 수 있다고 누군가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그 마이나 새가 많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듯 짹짹이고 있었다. 어떤 새들은 파닥파닥 날았다 줄에 앉았다 했고 어떤 새들은 음식물 구덩이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수십 마리의 새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마이나 새들을 보고 있을 때 음식물 구덩이 옆으로 우리 집 고양이 큐티파이가 아주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큐티파이는 입에 마이나 새 한 마리를 물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빨리 와봐. 큐티파이가 마이나 새 한 마리를 잡았어. 어떡하니?”


인도 고양이들은 야생적이다. 집 주위에 있는 도마뱀을 잡기도 하고 개구리, 생쥐를 잡는 경우도 많았다. 아이들은 고양이를 너무 사랑했지만 그만큼 다른 동물들도 사랑했다.

그래서 고양이들이 움직이는 무엇인가를 잡으려 할 때면 최대한 방해를 해서 다른 동물들을 잡지 못하도록 하곤 했다.

특별히 성민이는 새를 좋아했다. 나무에 앉아 있는 새 사진을 찍기도 했고 아픈 새를 키워주고 숲 속으로 보내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날 키우던 고양이 큐티파이가 새를 잡은 것이었다. 성민이는 재빠르게 큐티파이의 입에서 새를 빼서 휴지로 피를 멈추게 했다. 성민이는 붕대를 가지고 목을 감쌌지만 피를 많이 흘린 마이나 새를 살리기는 불가능했다.

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미안한 마음에 그리고 속상한 마음에.


성민이는 음식 구덩이 근처에 흙을 파고 마이나 새를 묻어 주었다. 죽은 마이나 새를 위해 흙을 파는 성민이 주위로 여전히 마이나 새 무리들이 울고 있었다.

고양이에게 잡힌 친구를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아이가 새를 묻고 난 후에도 한 동안 죽은 마이나 새의 친구들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시끄럽게 짹짹거리면서 울고 있는 마이나 친구들의 소리는 분명 평소와 달랐다.

음식을 찾았을 때 부르는 소리도, 즐겁게 날면서 내는 소리도 아니었다.

함께 지내던 친구 새의 죽음을 슬퍼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이 무서워 친구를 위해 선뜻 달려가지 못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후회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새들은 다시 죽은 친구 새가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울고 있었다. 그 소리가 너무 구슬펐다.

"마이나 새가 죽어서 슬픈 건 성민이만이 아닌가 봐. 저기 봐."

성민이는 새들을 쳐다봤다. 아이는 더 크게 울었다. 나는 울고 있는 아이를 꼭 안아줬다.

마이나 새를 위해 우는 것이 성민이만이 아니어서 나는 고마웠다.


마이나 새의 죽음을 슬퍼하는 성민이의 눈물과 친구 새들의 울음소리는 애틋한 햇빛이 되어 죽은 마이나 새의 무덤에 비취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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