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에 만난 달콤한 배려

1999년 수능날, 나는 가장 달콤한 초콜릿을 받았다

by 모두미

점심을 요리하는 중이었다.

남편도 출장을 갔고 아이들은 인도의 어린이 날이라고 선생님들이 준비한 특별 행사를 보기 위해 학교에 갔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곧바로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중이었다.

우리가 사는 곳에 의료 봉사를 하러 온 담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오늘 수능 일인 거 아세요?”

“그래? 오늘이?”

“네. 시간 정말 빠르죠. 지금 수능생들은 열심히 시험을 치고 있겠죠.”

“그러게. 정말 나는 수능 날을 잊고 산지 오래된 것 같아.”

그러고 보니 1999년 11월 17일. 그 날 이후로 나는 수능 일을 거의 잊고 살았다. 난 담이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수능 치고 난 뒤로는 수능 일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아. 성민이 현민이가 고3이 되면 또 달라지겠지?”

1999년 수능 날 이후로 나는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고 신참 간호사로 일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키웠다. 그리고는 인도에 왔으니 그 오랜 시간 동안 수능일은 나에게 특별한 기억 없이 남의 일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점심을 요리 하면서 나는 오랫동안 내 기억바구니 깊은 곳에 넣어 두었던 1999년도 수능 날을 기억했다.

추운 겨울, 나는 수능을 치를 학교에 도착해서는 정문 앞에 붙어 있는 수험시험을 응원 현수막들을 쳐다 보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교문 밖에 서 있는 수많은 학생들의 응원을 들으며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쟁터에라도 나가는 특전사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이라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교실 안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내가 모르는 학교에서 온 수험생들이었고 교실 중간에는 난로가 있어 교실 전체를 따뜻하게 해주고 있었다.

나는 내 번호가 적힌 책상에 앉았다. 자리도 낯설었고 사람들도 낯설었고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때 내 뒤에서 미리 앉아 있던 수험생이 내게 말을 걸었다.

“많이 긴장되죠?”

“네.”

“나도 그랬어요. 그냥 공부한 대로만 풀어요. 긴장하지만 않으면 돼요.”

그녀는 수능을 두 번째로 보는 것이라고 했다. 벌써 수능을 쳐 봤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일 년간의 재수 생활을 해 와서인지 그녀는 아주 담담하게 책상에 앉아 있었고 앞에 앉은 나를 격려해 주고 있었다. 짧은 그녀와의 대화를 마치고 다시 책상에 앉아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책상 아래에 작은 쪽지와 미니 초콜릿이 보였다.


‘당신은 잘할 수 있을 거예요. Good luck to you.(당신에게 행운이 있기를)’

작은 메모가 담긴 미니 초콜릿을 보는데 내 얼어 있던 신경들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뒤에 앉아 있던 그녀가 수줍은 미소를 내게 보내왔다.

그렇게 나의 수능 시험은 시작되었고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처럼 긴장하지 않고 담담히 문제를 풀어갔다.

시험이 다 끝나고 나는 뒤에 앉은 그녀에게 너무 고마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아네요. 작년에 내가 시험을 치러 갔을 때 누군가 내 책상에다 이런 걸 올려놨더라고요. 근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짧은 단발머리에 안경을 낀 그녀의 수줍어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던 그녀의 그 배려가 고마웠다.


그때 그 고마움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야지 했었는데 20년이 지나도록 난 그 기억을 잊고 있었다. 그녀가 줬던 초콜릿도 쪽지도 그 따뜻한 배려도.

늦었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달콤한 초콜릿과 마음이 담긴 쪽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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