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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Dec 23. 2019

코끼리와 싸우는 사람들

함께 일하고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과 함께 캠핑을 가기로 했다.

인도에는 캠핑문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캠핑의 선구자인 셈이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텐트를 차에 싣고 딸처럼 지내는 마실라네 집 근처로 향했다. 집에서 출발한 지 2시간쯤 지나자 높지 않은 산이 보였다. 마실라가 사는 곳은 차밭이었는데 조금만 더 들어가면 들판과 강이 있어 캠핑하기에는 딱 좋은 곳이었다.


겨울에는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강에는 물이 적었다. 우리는 강가에 텐트를 폈다.

넓게 펼쳐진 들판에는 수 십 마리의 소들이 배를 채우고 있었고 뒤쪽으로는 인도에 정착한 네팔 사람들이 사는 산이 보였다.

짐을 풀고 몇 명은 텐트를 칠 땅을 고르고 또 다른 친구들은 요리를 했다.

“여보. 이런 게 진짜 캠핑이지. 한국에서는 정해진 곳에서만 캠핑을 할 수 있잖아.”

그랬다. 이곳에서는 어디에서든지 캠핑을 할 수 있었고 불을 지펴 음식을 할 수 있었다. 인도 사람들은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았다. 가져온 나무들과 주변에 떨어져 있는 나무들을 모아서 불을 지피고 밥하기 시작했다.

강가에는 돌들이 많았는데 인도 친구들은 큰 돌들을 바람막이 삼아서 요리를 했다. 가져온 세 개의 텐트가 다 쳐지고 지난달에 인도 쇼핑몰에서 산 접이식 테이블도 펴 놓고 제대로 모습이 갖춰 줬을 때쯤 점심 겸 저녁이 준비되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은 캠핑이었지만 모두가 함께한다는 그 자체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때 그 지역에서 지내고 있는 조티쉬가 우리를 보러 왔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저녁을 함께 먹는데 조티쉬가 말했다.


“근데 어제 저 산 밑쪽에서 사람 한 명이 코끼리에 밟혀서 죽었어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시체가 그대로 있더라고요.”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하는 조티쉬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 지역이 코끼리가 자주 나타나는 곳이라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겨울에는 당연히 코끼리도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탓이었다.

“조티쉬. 진짜야? 오. 코끼리 몇 마리나 나타난 거야?”

“코끼리들은 무리를 지어 다녀요. 한 30마리 정도.”

“뭐야. 조티쉬가 우리 겁주려고 하는 거 아냐?”

밤에 코끼리 나타나면 안 되니까 불을 펴 놓고 자야겠다는 둥 강가에 큰 돌들이 많아서 코끼리들이 가까이 오다가는 넘어질 수 있으니까 이쪽으로 안 올 거라는 둥 서로 농담을 해가며 불안한 마음을 없애려는 듯했다.

저녁이 되자 모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주위에 모였다. 산 중간중간에 있는 집들에서 나오는 불빛과 밤하늘의 달과 별빛만 비췄다. 준비해 갔던 간식거리와 음료수를 나눠 먹으면서 우리는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닥불이 꺼질 때쯤 모두 텐트 안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애벌레처럼 침낭 안에 들어 가있는 우리 집 세 남자를 지나 나도 준비되어있던 검은색 침낭 안으로 들어가 눈을 붙였다.

모두가 코를 골며 자는 밤 나는 밤새 잠을 설쳤다.

꿈속에서 수많은 코끼리들이 달려온다고 피하라고 소리치는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는 잠에서 깬 후부터였다.

‘혹여나 코끼리가 오지는 않을까? 코끼리가 나타나면 차로 도망쳐야 하겠지? 그런데 차키는 어디다 둔 거지?’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설치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그날 밤 코끼리 무리는 우리 텐트를 공격하지 않았다. 나는 코끼리 덕분에 평생 잊을 수 없는 밤을 보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데 조티쉬와 마실라가 잘 아는 마을 주민 두 분이 우리를 만나러 오셨다.

“밤새 아무 일 없었어요? 와. 여기서 텐트 치고 잠을 잔 사람들은 당신들이 처음일 거요”

“그러니까요. 참 다행히 코끼리가 밤에 저희를 공격하지 않았네요.”

우리 모두는 진심으로 기쁘게 웃었다.

마을 주민 두 분은 곡식을 수확하는 시기에는 거의 모든 마을 남자들이 모여서 횃불을 들고 마을을 지킨다고 했다. 자기 집 근처에 모아 놓은 곡식을 지키려다 코끼리에게 밟힐 뻔했다는 한 아저씨는 코끼리들도 먹을 것이 없어서 내려오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마른 체형의 아저씨들은 코끼리를 버금가는 마을의 용사들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코끼리들이 살고 있는 숲 사이에 있는 넓은 들판을 봤다.

마음이 숙연해져 왔다.

일 년 동안 수고한 결실 물을 지키기 위해 횃불과 총소리로 밤을 새우는 그 마을의 주민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먹고 살아남기 위해 마을로 내려오는 코끼리 무리들을 생각했다.

쿵쿵 거리는 코끼리 무리들의 움직임 소리가 들리면 어두운 밤 수많은 횃불들이 마을 주위를 둘러쌌을 것이다.


다시 마을로 돌아가는 아저씨들에게 나는 잘 익은 사과와 빵을 전해 주었다. 그들에게 맡겨진 삶은 나의 삶 보다 더 거칠고 무거워 보였지만 지금처럼 잘 이겨내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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