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평소보다 밥을 많이 먹는 성민이는 한국 나이로 14살이다. 한마디로 쑥쑥 자라는 시기였다.
아이가 자라는 걸 이렇게도 모르고 있었다니.
난 한숨지으며 몇번이나 아이와 옷의 길이를 비교해보았다.
더 오래 있다가는 옷을 안 바꿔 줄 수도 있었고 코로나가 심해지면 아예 나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결국 다음날 바지를 바꾸기 위해서 3시간 걸리는 시내의 옷 가게로 향했다.
복잡한 시내를 지나야 했고 구불구불 산을 넘어가야 했다. 익숙한 길이었고 바로 전날 지나간 길이라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요즘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생겨서 인도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려보자 하는 생각에 핸드폰을 들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주 자세히 봐야 보이는 차밭의 여인들
푸르른 차밭은 이곳에 봄을 가장한 여름이 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차밭 사이사이로 따뜻하다기보다는 뜨거워진 한낮의 태양 볕을 피하려 우산을 쓴 여인들이 모습이 보였다. 차밭에서 일하는 여인들이었다. 인도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다는 그녀들은 평생 차를 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수고로 만들어지는 다즐링 차. 사람들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저 여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까.
아들아 조심해서 가라. 천천히...
한참을 가다 보니 인도에서 자전거 릭샤라 불리는 리어카를 끌고 가는 남자가 보였다. 대부분 리어카에는 물건들을 싣고 가는데 그의 리어카에는 나이 든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남자의 노모 같았다. 입고 있던 사리의 끝 부분으로 머리를 감싸 뜨거운 햇볕을 가리고 있어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는 남자의 표정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뒷모습은 포근해 보였다.
‘어머니. 천천히 가고 있으니까 편하게 앉아 계세요.’
조용히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 말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옷을 바꾸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많은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디서 잘랐는지 나뭇가지들을 자전거에 잔뜩 싣고 가는 아저씨들, 밭에서 일하다 왔는지 도구들을 자전거에 동여매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작은 트럭 뒤에 몇십 명이 모여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꾼들은 분명 건축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치는 작업을 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기계를 불러서 할 것을 이곳 인도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멘트를 머리에 이고 날라서 콘크리트를 친다. 그 작업이 얼마나 고된지 알기에 그들의 모습이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다. 가족들을 생각하며 그 힘든 일들을 해내는 것일까? 트럭 뒤에 다닥다닥 붙어서 집으로 향하는 그들의 마음은 어떨까?
이유 없이 그들의 모습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
옷을 바꾸러 갔다 온 시간이 왕복 6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도의 길은 내게 많은 질문들을 던져 주었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인도의 길은 내게 그 질문의 답들을 보여주었다.
노모를 싣고 가는 남자의 릭샤를 통해서, 그 푸르른 차밭에 있는 우산들을 통해서, 그리고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서.
나는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인생에 대해 배운다.
그리고 나를 돌아본다.
얼마만큼 열심히 산다면 저들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래서 나는 인도가 좋다. 인도의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좋다.
너도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거니?
** 글을 쓰는 지금은 코로나로 인도 전체가 '얼음 땡' 게임 에서 얼음이 되어 버렸어요. 일주일간 모든 차량이 멈추고 상점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오늘이 첫날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