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두미 Mar 26. 2020

할머니의 간절한 소원

타지마할

할머니의 간절한 소원


3월 마지막 주가 되니 이곳의 온도도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아침저녁에만 약간 서늘하고 낮에는 31도까지 올라가니 계절이 바뀌는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피아노 교실에 앉았다. 전자 피아노를 보관하는 나무 케이스 위에 컴퓨터를 올려놓고 창문을 열었다. 글을 쓰려고 하는데 자꾸 더운 열기가 들어온다. 여름이었다. 나는 여름을 맞이하는 첫인사로 피아노교실 천장에 붙어 있는 큰 인도식 선풍기를 틀었다.

‘안녕. 여름아. 환영해.’


작년 6월, 인도는 가장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델리 시내의 거리 온도가 48도까지 올라갔을 때였으니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힘든 시간이었다. 그때 우리 가족은 엔지오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었다.

우리와 함께 한 가족 중에는 남인도 병원에서 환자를 보면서 교수로 계시는 미국 의사 가족도 있었다.

그 의사 부부에게는 노모가 계셨는데 어디를 가나 그녀를 휠체어에 태우고 이동했다.

식사 시간에도 세미나 중에도 할머니는 별말씀 없이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필요한 것은 두 부부가 챙겨주곤 했다.

나도 잠깐 할머니와 인사할 기회가 있었다. 속삭이듯이 이야기하는 그녀의 작은 목소리와 함께 떨리는 그녀의 손은 그녀가 살아온 시간들을 이야기해주는 듯했다.


세미나가 마치는 마지막 날 참여자 모두를 위한 타지마할 방문이 있었다. 8년 동안 인도에 살았지만 보지 못했던 타지마할을 방문한다는 것에 들뜬 마음도 있었지만 살인적인 더위에 야외로 나간다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한낮의 날씨가 워낙 뜨거웠기 때문에 우리는 새벽 4시 30분 정도 호텔에서 출발했고 오전 9시 정도에 타지마할에 도착했다.

오전이라고 해도 이미 날씨는 뜨거웠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우산이나 그늘을 찾아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그 할머니도 있었다.

남편도 나도 아니 그곳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할머니를 걱정했다. 건장한 사람도 더위를 먹고 쓰러질 수 있다는데 잘 걷지도 못하시는 할머니가 야외활동을 한다는 것은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타지마할에 도착하자 가이드는 건물이 있는 곳은 이곳에서 좀 거리가 되기 때문에 오토릭샤(오토바이를 개조한 개방형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삼삼오오 나누어져서 오토릭샤를 탔다. 남은 사람은 그 의사와 할머니뿐이었다. 휠체어는 오토릭샤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할머니를 태운 채로 휠체어에 밀고 입구까지 가겠다는 것이었다.

이 뜨거운 태양 아래 15분 정도를 휠체어를 밀면서 걷겠다니. 그 의사에게도 할머니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은 그런 두 분을 위해 함께 걸어가겠다며 오토릭샤에서 내렸다. 아무래도 의사 선생님보다는 본인이 젊으니 할머니 휠체어를 밀어 드리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렇게 우리는 오토 릭샤를 타고 남편과 의사 선생님 그리고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밀며 타지마할 안에 도착했다.

타지마할은 아름다웠다. 수많은 방문객들로 인해 조금 복잡하긴 했지만 죽은 왕비를 잊지 못하는 왕의 애잔한 마음이 녹아 있는 것처럼 건물은 아름다웠고 경이로웠다.

그리고 뜨거웠다.

타지마할을 걷는 내내 그 더위는 우리를 삼켜먹을 것처럼 우리 주위를 감쌌다. 나는 뜨거운 열기를 느낄 때마다 할머니를 쳐다봤다.

‘마른 그녀의 체구로 이 더위를 견딜 수 있을까?’

하지만 의사 부부는 노모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진을 찍으면서 타지마할과 그들의 얼굴을 한 사진에 담곤 했다.

타지마할 건물로 올라가는 곳에는 휠체어가 올라갈 수 없는 계단뿐이었다. 결국 남편과 의사 선생님이 함께 할머니가 탄 휠체어를 들고 계단을 올라갔고 계단을 내려갔다.


타지마할의 윗부분은 조금 더 시원했다.

건물 뒤에 흐르는 강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의사 선생님 가족이 보였다.

사진 찍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의사 선생님과 기쁜 얼굴을 하고 있는 아내 그리고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는 아들 부부처럼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조금 힘들어 보일 뿐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의사 부부에게 물었다. 더운 날씨에 할머니가 괜찮으시냐고.

그때 의사의 아내는 내게 말했다.


“우리가 인도에서 지낸 지 몇 년 후에 어머니가 몸이 안 좋아지셨어요. 미국에 혼자 지내실 수가 없어 인도로 모시게 되었어요. 어머니에게는 꿈이 하나 있었는데 타지마할을 방문하는 거였지요. 미국에서 있을 때부터 꿈꿔왔던 타지마할을 죽기 전에 꼭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셔서 이렇게 뜨거운 날씨에도 타지마할 관광에 참여하시도록 했답니다.”

꿈,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었던 할머니의 꿈.


타지마할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은 더 멀게 느껴졌다. 가지고 있던 물도 다 마셔서 거의 탈진할 것만 같았다. 거칠게 숨을 쉬어도 뜨거운 열기만 몸속으로 들어왔다. 함께 간 모두가 힘들어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쓰러질 것처럼 약해 보이던 할머니의 얼굴에는 평안함이 있었다.

어쩌면 평생 꿈꿔왔던 그녀의 소원이 성취된 오늘의 이 뜨거운 공기조차도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해 6월의 타지마할은 웅장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타지마할은 평생 바라 왔던 꿈을 이룬 한 할머니의 모습으로 기억될 것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도를 달리며 삶을 배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