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와서 한국 뉴스를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가끔, 아주 가끔 한국이 그리울 때 뉴스 시작 음악을 들으며 위로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최근 나는 뉴스를 틀어 놓고 산다.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처음에는 심각했던 한국의 상황에 마음 졸이며 뉴스를 시청했고 지금은 가끔 들리는 인도 소식과 전 세계 소식에 귀 기울이고 있다.
마스크를 쓴 채 물건을 사는 사람들
처음 인도 통금령이 내려진 것은 3월 22일이었다. 하루 종일 인도 전 국민 누구도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인도도 시작하는구나 했다. 그런데 23일 일주일 인도 전역 봉쇄령이 내려졌고 바로 다음 날 저녁 모디 총리는 3주간 인도 전 지역을 봉쇄한다고 이야기했다.
뉴스로 여러 번 보아왔던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인도에도 적용된 것이었다. 3주간 밖에도 다닐 수 없고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갑갑했다. 인도에 확진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열악한 의료 환경을 고려했을 때 미리 막아야 한다는 정부의 노력이 보이는 결정이었다.
인도는 나라가 아주 넓다. 그래서 코로나 확진이 있는 곳에서 우리가 사는 지역까지는 꽤나 먼 거리였다.(아직까지는) 하지만 봉쇄령이 내리기 바로 전날, 거리는 다른 때 보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많았다.
'코로나가 이 시골에도 영향을 미치는구나.'
나는 새삼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언제부턴가 난 밥을 할 때면 유튜브로 뉴스를 틀어놓았다. 유럽의 감염 이야기 그리고 한국과 세계 곳곳의 의료진들의 노고, 모든 것들이 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몇 나라가 아닌 세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3주간 먹을 양식이 있었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코로나로 인한 인도 전체 봉쇄령이 필요한 조치였다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그러면서 밖에 나가지 못하는 갑갑함을 불만으로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전 내가 있는 웨스트 벵갈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뉴델리의 상황을 보았다.
봉쇄령으로 직업을 잃은 수천 명의 일용직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모여 있는 모습이었다.
모디 총리는 봉쇄령을 내리면서 모든 기차와 버스를 멈췄고 비행기도 국내선 및 국제선 모두 운행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봉쇄령을 내렸다.
직업을 잃은 수많은 노동자들은 먹을 음식이 없어서 울었고 지낼 곳이 없어서 울었다. (정부에서 도움을 주고 있지만 수 천명의 사람들을 감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부나 지역에서 준비해 준 버스도 사람들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몇백 킬로미터를 걸어서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도로. 특히 아이들을 안고 업고 그 긴 여정을 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 사람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로 죽기 전에 우리는 굶주려 죽을 것입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봉쇄령은 수천 수 만 명의 사람들의 직업을 잃게 했고 그들의 가정을 굶주리게 만들었다.
나는 여전히 인도의 북동쪽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나름대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의 곳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닌 굶주림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살기 위해 그 먼거리를 걷고 또 걷고 있었다.
3주 간의 격리가 갑갑하다고 불평하던 내 모습이 얼마나 부끄럽던지.
그들을 찾아가 도울 수는 없으나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곳, 이곳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