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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파티 한 장, 추억 한 모금

나는 차파티를 먹으면서 추억을 소환하고 있었다

by 모두미

남편과 3시간을 달려서 자동차 정비소에 도착했다.

작년에 트럭을 사고 트럭 뒷부분을 개조해서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했는데 안에 인테리어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차 뒤를 인테리어 하는 재료들은 인도의 수도인 델리에서 보내온 것이었고 차를 수리하는 사람들은 델리에서 기차로 23시간 떨어진 실리구리라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작은 문제인데도 수리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근처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도시 구석진 곳에 자동차 정비소가 있었기 때문에 근처에 제대로 된 식당도 보이지 않았다.

길 가에 아주 작은 가게에서 차파티를 만드는 아저씨가 보였다. 허름한 가게 안으로 남편과 내가 들어갔다. 낡은 플라스틱 테이블에 앉아서 벽에 붙여진 메뉴를 읽었다.

차파티(통밀로 만든 인도 전통 음식), 탈리(인도의 백반)....

몇 가지 없는 메뉴 중에 남편은 통밀로 만든 빈대떡 같은 것을 시키고 나는 밥과 기본 커리가 나오는 탈리를 시켰다.

아저씨가 빠른 손놀림으로 차파티를 반죽하고 있었고 옆에 앉은 할아버지는 인도 신문을 읽으며 주문한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마주 앉아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은 언제 한국이 그리워?”

남편은 핸드폰으로 한국의 뉴스를 읽고 있어서인지 대답이 늦었다.

“응? 뭐라고?”

“아니. 당신은 언제 한국이 그리우냐고.”

남편은 한참을 생각하고 있었다.

“얼~ 당신 이제는 한국이 그리울 때가 없는 거야?”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당신은?” 남편은 내게 질문을 패스했다. 아마 당장 답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었나 보다.

“나는.....” 나 역시 곧바로 대답하지는 못했다.

“응. 나는 서점 가고 싶고 문구점 가고 싶을 때? “

내가 지내는 곳에는 제대로 된 서점이 없다.(물론 잡지들이나 사전 같은 것을 파는 낡은 구멍가게는 있지만) 차 타고 3시간 거리에 서점이 하나 있지만 공항 근처에 있는 큰 백화점에 위치하고 있어 큰 맘먹지 않으면 서점을 가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서점이 가장 그리웠다.

남편은 말했다.

“나는 이렇게 서비스를 받아야 할 때.”

나는 남편이 무엇을 뜻하는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인도는 가게 주인이 왕이다. 어떻게 그런 배짱이 그들에게 왔는지는 나도 모른다. 어쩌면 여전히 존재하는 카스트 제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빈번히 고객들을 무시하기 일쑤다. 인도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지만 서비스의 천국인 한국에서 온 우리로써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해 주어야 할 서비스도 미루고 때로는 오히려 큰소리치며 돈을 더 내라고 이야기하는 인도 사람들을 만나며 남편도 많이 지친 것이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이에 식당 아저씨는 스텐 접시 위에 콩 커리와 감자볶음과 조금 식은 차파티를 얹어주었다. 미리 요리해 두었던 차파티는 미지근하니 맛이 없었다.

‘주인은 갑이고 손님은 을이니까 주는 대로 먹어야지’ 나는 깨끗이 씻은 오른손으로 차파티를 뜯어 커리를 묻혀 입에 넣었다. 차파티를 다 먹어갈 때쯤 아저씨는 아까 반죽하던 통밀로 아주 얇으면서도 고소한 차파티를 내왔다.

따끈따끈한 차파티.

남편과 나는 오랜만에 맛있는 차파티를 먹는다면서 연속 4장을 먹었다. 어느새 우리의 대화 주제는 맛있는 차파티가 되었다.

가게 밖에 보이는 2층짜리 건물, 학교 갔다 오는 학생들, 그리고 분주한 자동차 소리.

차파티를 먹으며 밖을 보는데 갑자기 9년 전 처음 인도에 왔을 때가 기억났다.

처음 인도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 냄새, 소리. 따뜻한 차파티 덕분이었는지 시골 변두리에 위치한 그 가게의 친절한 아저씨 덕분이었는지 나는 차파티를 먹으며 추억을 소환하고 있었다.


서점이 없는 아쉬움, 서비스를 제대로 해 주지 않는 인도 사람들에 대한 불편함이 따뜻한 차파티 몇 장에 사르르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남편과 앉은 그 순간이 행복하기까지 했다.

아마 노년에 남편과 나는 불편하고 아쉬웠던 인도에서의 경험들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작은 가게에 앉아 따뜻하고 고소한 차파티를 네 장씩 먹었던 이 순간도 기억해 낼 것이다.


만약 누군가 오늘 하루가 많이 힘들다고 이야기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따끈따끈한 차파티 한 장 드릴까요? 일단 뭔가를 먹으면서 잠시 주위를 보세요. 언젠가는 힘들었던 이 감정을 그리고 이 순간을 추억할 수 있을 때가 올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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