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내가 사는 곳은 인도에서도 아주 북쪽 구석진 곳이다. 그래서 나를 개발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온라인 강좌였다.
물론 온라인 강좌도 느린 인터넷 때문에 자주 멈추긴 하지만 말이다. 그나마 내게 만족감을 주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그림이었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중고등학교 때 어느 누구도 내게 그림이 소질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빠가 내가 그리는 강아지를 보고 이렇게 말씀했었다.
“야! 해옥이가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구나. 계속 연습해봐.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사진의 강아지와 내가 그리는 강아지를 보고 또 봤다. ‘어쩌면 내게 잠재된 재능이 있는지도 몰라.’
초등학교 미술 시간.
내 옆에 앉은 친구의 그림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나는 그때 팍 퍼지는 내 저렴한 붓과는 달리 탄력 있게 오물 어진 그 아이의 고급 붓의 터치가 그 이유라고 생각했다.
‘내가 저렇게 좋은 붓을 사면 아마 나도 잘 그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붓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도 나는 그림에 대해 잊고 살았다. 그저 일기장이나 다이어리에 끄적거리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때쯤 나는 다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온라인 소묘 강좌를 끊었다. 줄 긋기부터 공 그림 그리기 등 기초를 열심히 다지겠다며 시작했지만 결국 다 듣지 못하고 기간이 끝나버렸다. 혼자 인터넷 강의를 통해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 컨트롤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작심삼일을 친구 삼는 그런 사람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끝이 끝이 아니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나는 다시 인터넷 강의를 신청했다. 이번에는 지인의 말에 혹해서 유화를 신청했다.
유화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나는 유화 물감은 인도에서 붓은 한국에서 사 왔다. 가족 모두가 잠든 사이 유화에 필요한 페트롤과 기름 그리고 물감을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릴 때면 독한 냄새에 머리가 아플 때도 있었다. 그래도 따라한 그림이 완성될 때면 그처럼 뿌듯할 수가 없다.
물론 선생님이 시키는 그대로 따라 그리는 거라 대충 한다고 해도 그럴법한 그림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두 번째 유화 강의는 첫 번째보다는 성취 율이 높았으나 여전히 반 정도 수강하고 기간이 끝났다. 이쯤 되니 그림을 완성한 성취감도 있었지만 여전히 다 마치지 못하고 수강일이 끝나버린데 대한 좌절감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를 기다려 온라인 강좌를 끊었다. 이번에는 1년 치였다. 1년 치는 초급, 중급, 고급까지 배우는 과정이어서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인터넷 강좌 유화 강의를 1년 치 끊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그 다짐도 있었을 테지만 이렇게라도 끊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6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나는 이제 초급 후반부를 하고 있다. 얼마 전 고흐의 ‘삼나무가 있는 밀밭’을 그렸다. 요즘 따라 인터넷이 느려서 중간중간 멈추는 선생님의 강의를 틀어놓고 그림을 그렸다. 운치 있는 색깔이 나온 선생님의 그림과는 다르게 나의 그림은 어딘가 모르게 부족한 그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그림의 제목을 ‘삼나무가 있을 뻔한 밀밭’으로 부르기로 했다.
고흐가 울고 갔을 삼나무가 있을 뻔한 밀밭
남편은 그림을 그리는 나를 보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성민이와 똑같은 것 같아. 취미가 주기적으로 바뀌어.”
나는 그 말에 공감했다. 성민이는 도마뱀 키우는 것을 좋아하다가 어느 순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지금은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언제 또 성민이의 취미가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바이올린을 배우겠다며 한동안 바이올린 연습에 몰두했고 그림을 그렸다.
어렸을 적 꿈처럼 피아노로 어려운 곡을 치고 싶다고 연습을 했고 작가가 되겠다고 글을 썼다.
그리고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는 남편의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면 되는 거였다. 주기적으로 취미 바꾸기.
한 가지 취미를 끝까지 못해서 좌절하는 것보다 주기적으로 취미를 바꾸는 나를 합리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나는 한 가지 취미를 꾸준하게 하지 못한다. 사실 그러기에는 내 인내심이 부족하다. 하지만 실패할 거라고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는 적어도 몇 달이라도 시도하고 바꾸는 게 훨씬 낫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주기적으로 취미를 바꾸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지금은 유화를 그리고 있고 (물론 일주일에 한 시간 이상하기가 쉽지 않지만 말이다.)
간편하게 그릴 수 있는 펜 드로잉의 기초를 위해 줄 긋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글을 쓴다.
내 취미들이 자주 바뀌어서 시간은 좀 오래 걸리겠지만 어느 순간 적어도 유화로 내 추억을 그릴 수 있고 펜 드로잉으로 인도의 복잡한 시내를 그릴 수 있는 아마추어 화가가 되어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