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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Feb 14. 2020

갑자기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때

뇌 휴식 시간

인도 살면서 내가 뛰면 모두가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거나. 내게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요. 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예요. 급할 것 없어요.”

인도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게을러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너그럽고 여유롭게 삶을 살아간다.


인도에 살아도 나는 무척 바쁘다. 정해진 일정들을 마무리해야 하고 밀린 오피스 업무들을 정리할 때면 하루가 24시간 인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이어리 속에 잔뜩 적혀 있는 해야 할 목록들이 나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을 때면 안절부절 마음만 급하다.


그런데 그런 날들 중에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아주 가끔 내게 찾아오는데 이를테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급해 보이던 일들 밑에 이런저런 핑계들이 붙어서 굳이 내가 오늘 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그런 날 말이다.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오피스에 앉아 정리한 파일들과 영수증을 올려놓고 컴퓨터에 앉았는데 갑자기 내게 평온한 마음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앉아 있고 싶은 그 순간을 누군가는 ‘멍 때린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다이어리를 펼치고 해야 할 목록들을 체크해 갔다.


1. 비자 연장하기 – 이미 연락은 해 놨고 서류만 받으면 되는 거니까.

2. 피아노 학생들 새로 뽑기 – 수능과 기말고사 때문에 4월 개학 후 하기로 교장선생님과 상의 끝났으니 이건 패스

3. 쉬운 피아노 악보 만들기 – 이건 아직 시간이 있고

4. NGO 보고서 보내기 – 이것도 서류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고

5. 서류 정리 – 이미 서류를 요청한 상태니까 도착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고


그렇게 열 개가 넘는 목록들에 모두 핑곗거리를 찾은 후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피아노 교실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교실에서 내 다이어리 목록에는 없는 책을 읽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덕분에 나는 잠깐의 뇌 휴식 시간을 가졌다.


복잡한 일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만 같을 때,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때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컴퓨터 바탕화면에 열려 있던 많은 화면을 닫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얘들아. 지금은 뇌 휴식 시간이야. 잠시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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