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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부자와 팝콘

나는 사랑을 주기 위해 사랑을 받기 위해 그들을 기다린다

by 모두미

집시들과 교류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12월 겨울이었다.

집시들은 야생 꿀을 따서 팔기도 했지만 대부분 구걸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많은 집시들은 구걸을 하기 위해 ‘멜라’라 부르는 야시장을 따라다니거나 기차역 근처에 자리 잡는다. 우리 지역에는 항상 연말이면 멜라가 들어섰다. 멜라가 시작되면 생필품부터 인도 전통 기념품까지 다양한 상인들이 모인다. 가끔 큰 멜라가 자리를 잡을 때면 인도식 놀이 기구도 들어선다. 그리고 집시들이 온다.


10년 차 인도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으로서 내게 집시들은 피하고 싶은 존재였다. 집시 아이 한 명에게 돈이라도 줄 것 같으면 어디선가 우르르 몰려와서 자기들에게도 돈을 달라고 떼쓰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사실 그들을 피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돈을 주고 싶지 않다기보다는 두려웠다. 억센 아이들이 어른들이 두려웠다.

어떤 스타일을 원하니?

그런데 같이 일하는 인도 친구가 집시 부족들의 이발 봉사를 갔고 그를 계기로 나도 처음으로 그들이 사는 곳을 방문했다.

기차역 근처에 있는 강가는 여름이 되면 물로 가득 차지만 겨울, 즉 건기 때는 들판으로 변한다. 집시들은 그 강가 들판에 대나무 서너 개로 텐트를 만들고 살고 있었다. 쓰레기들과 소똥 그리고 들풀들로 가득 찬 들판 위를 아이들은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채로 뛰어다니곤 했다.

나는 그곳을 찾을 때마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상처를 소독해 주고 필요한 약들을 전달해 주곤 했었다. 또 과일이나 음식들을 때론 옷을 전달해 주기도 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그들이 사는 곳을 방문했었는데 방문할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서 다른 모습을 봤다.

아이를 돌보며 밥을 하는 평범한 여인
노모를 걱정하는 아들의 마음
수다쟁이 아가씨들

돈을 구걸하면서 다가오는 아이들이 아닌 밝게 웃으면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넓은 들판을 부엌 삼아 얼마 되지 않는 야채로 밥을 요리하는 평범한 여인들의 모습을,

늙은 노모를 낡은 텐트 안에서 정성껏 모시는 전형적인 효자 아저씨지의 모습을.

그 모습은 집시 하면 생각나는 덥수룩한 수염과 지저분하고 찢어진 옷 그리고 쾌쾌한 냄새가 설명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살아도 그들보다는 좋은 환경에 살고 있다며 위로받고 있던 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주는 것보다 아이들이 주는 웃음과 그들의 순수한 모습이 내게 더 큰 것을 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집시들과 사랑에 빠졌다.


그날은 한국에서 우리 집을 방문하신 아빠와 야시장을 구경하러 나갔을 때였다. 야시장에는 알록달록 인도 장식품을 시작으로 인도 책, 주방용품, 장갑과 털모자 등 여러 가지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야시장을 거의 다 구경했을 때쯤 내 눈에 들어오는 두 부자의 모습이 보였다. 가게 앞에 앉아 있는 아저씨는 분명히 집시 부족을 방문했을 때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아빠 다리 위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꼬마 역시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나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나마스떼! 바야! (안녕하세요. 아저씨)”

그러자 집시 아저씨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는지 내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 자고 있었다.

집시 부자가 앉아 있는 작은 매트 앞에 놓여 있는 그릇에는 하루 동안 받은 동전들과 지폐가 모여 있었다. 아저씨는 뒤늦게야 내 얼굴을 알아보고 환한 미소를 보였다. 나는 잠깐만 기다리라고 이야기하고는 팝콘 가게로 갔다. 따끈따끈한 팝콘 하나를 주문했다. 아빠는 그런 나를 보더니 말했다.

“야. 아빠는 팝콘은 별론데.”

“아. 아니요. 아빠. 이거 저기 집시들 주려고요. 여기 잠깐만 계세요.”

나는 따끈한 팝콘 봉투를 집시 아저씨에게 전달해 주었다. 집시 아저씨는 돈이 아닌 팝콘을 받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바로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잠들어 있던 아이를 깨웠다. 그리고 잠에서 깬 꼬마는 신이 나서 팝콘을 먹었다.

나는 아저씨와 아이에게 나중에 보자고 이야기하고는 다시 아빠에게로 돌아갔다. 그 근처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은 집시 부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향해 웃음으로 답했다.

이 사람들은 내가 아는 사람,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


잘 아는 사람. 집시들은 내게 그런 사람들이 되었다.

지금은 우기가 시작되었고 집시들은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내년 겨울 다시 그들이 이곳으로 돌아올지 나는 모른다.

이동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듯 이제 기다리는 것이 나의 운명이 되었다.

내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꿀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집시들.

나는 사랑을 주기 위해 그리고 사랑을 받기 위해 그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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