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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발라주세요

사랑해 주세요

by 모두미

“알주야. 오늘 오후에 집시 부족 방문하러 가자.”

“네. 그럼 제가 약을 준비할게요.”

알주는 나에게 처음 집시 부족을 방문하자고 제안했던 친구이자 지금까지 나와 가장 많이 집시들을 방문한 친구이다. 그래서 집시 부족들에게 어떤 약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가방에 거즈와 면봉 소독약 그리고 피부약을 잔뜩 가지고 집시들이 있는 강가로 향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10분 정도만 달려가면 나오는 작은 강가.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철로 만들어진 낮은 울타리를 넘어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면 집시들이 사는 들판이 나왔다. 들판 한 중앙으로 가는 길 주위에는 낮은 웅덩이가 많았는데 물이 고여 있는 곳에서는 집시 아이들이 물놀이를 했고 마른 곳에서는 흙놀이를 하곤 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낡은 천막들이 보였는데 바로 집시들이 사는 집이었다.

쓰레기가 넘쳐나고 소똥이 즐비한 들판에 그들이 살고 있었다.

낡은 플라스틱으로라도 덮을 수 있는 천막이 있으면 다행이었다. 어떤 집들은 천막 살 돈이 없어 추운 날씨에도 바닥에 낡은 이불만 깔고 아이들과 움츠리며 잠을 자기도 했다.

대부분의 집 앞에는 작게 파인 구멍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곳에 주워온 나뭇가지를 놓고 불을 붙여 요리를 하거나 추운 날씨에는 손과 발을 녹이는 데 사용했다.


“나마스테~!!”

나와 알주는 반갑게 인사하며 집시 부족들에게 다가갔다.

벌써 몇 주째 그들을 방문하고 있었던 터라 우리의 방문이 새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가져간 약 가방을 땅에 내려놓고 나도 쪼그리고 앉았다. 제일 먼저 온 손님은 바로 쿠시였다.

2살 정도밖에 안 된 여자아이 쿠시. 쿠시의 오른쪽 팔에는 화상 상처가 있었다.

부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뛰어놀다가 모닥불에 데는 일이 자주 있었다. 쿠시도 그런 경우였다. 작은 팔에 생긴 상처에서는 진물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상처를 소독하고 화상연고를 바른 후 거즈로 감싸주었다. 치료가 아플 만도 한데 쿠시는 이름처럼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쿠시를 시작으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피부병을 치료해 주었다. 치료라고 해 봤자 다른 것이 없었다. 소독해 주고 피부 연고를 발라주는 것이 다였다.

20191220_164505.jpg 쿠시야 건강하게 자라라

아이들 치료가 거의 마치고 어른들의 피부병을 치료해 주고 있는데 한 꼬마가 찾아왔다.

집시 아이들 중에도 가장 개구쟁이였던 아이였는데 나를 보더니 갑자기 무릎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여기가 너무 아파요. 저도 약 발라 주세요.” 나는 아이의 무릎을 잘 살펴 보였다. 하지만 상처는 이미 아문 지 오래 돼 보였다.

“응. 꼬마야. 여기는 거의 다 낳았는데. 약 안 발라도 되겠어.”

그러자 꼬마가 다시 내게 팔을 보여주며 말했다.

“안띠! 그럼 여기 팔에 피부병 보이죠? 여기 약 발라 주세요.”

난 아이의 팔에 있는 자국들을 보았다. 분명 피부병으로 고생한 것이 맞지만 지금은 다 회복된 자국이었다.

“응. 이곳도 다 나았는걸.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러자 꼬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갔다. 아이는 많이 실망한 모습이었다. 난 그제야 꼬마의 말을 이해했다. 꼬마가 말하는 ‘약 발라 주세요’는 여기가 아파요가 아니라 ‘저를 사랑해 주세요’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나는 귀여운 꼬마의 모습이 그리고 눈치 없는 내 모습이 너무 재밌어 웃음을 터트렸다. 주변의 아이들도 이 상황을 이해했는지 나를 보며 같이 웃었다. 나는 꼬마를 다시 불렀다.

“그래. 알겠어. 자. 어디 보자. 어... 정말 여기에 약을 발라야겠네. 잠깐만 기다려봐.”

나는 연고를 살짝 묻혀서 꼬마의 팔에 발라주었다. 그제야 꼬마는 만족한 듯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나도 웃었다. 그날 이후로 집시 부족을 방문할 때면 나는 아이들의 말을 더 귀 기울여서 듣고 아이들의 표정을 더 자세히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사실 아이들은 작은 초콜릿보다도 우리의 따뜻한 인사를 기다렸고 따스한 미소를 좋아했다.

아이들이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다. 그래서 난 집시 아이들 곁에 가면 최대한 계속 웃었다. 내가 웃으면 아이들이 웃었고 그런 우리를 보며 어른들이 웃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사랑에 취한 듯 웃음에 취한 듯 행복해했다.



*지금은 이곳에 우기가 되어서 집시 가족들 대부분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했어요. 또 건기가 되면 그들을 만날 수 있겠지요. 그전에 빨리 코로나가 사라지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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