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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그리고 집시가 돌아오다

by 모두미

11월이 되면서 날이 서늘해졌다. 계속 내리던 비도 그치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졌다. 내가 사는 북동쪽 인도의 건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는 비 대신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아 풀잎들을 적신다. 우리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겨울의 모습이기도 하다. 남편과 먹을 것을 사러 시장에 나가는데 기찻길 주변의 강이 보였다. 우기 동안 사람들이 돛단배를 타고 다니며 물고기를 잡던 곳은 이제 들판이 되었다. 그리고 땅이 마르자 집시들이 다시 그곳에 돌아왔다.

우리는 집시들을 위한 첫 번째 봉사로 헌 옷을 선물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지인들이 보내 준 헌 옷들과 우리 가족 옷들, 그리고 영양제를 챙겼다.

함께 간 인도 친구들이 아이들을 불러 모아 노래를 가르치는 동안 우리 팀은 가족별로 영양제를 나눠 주었다.

서로 더 받으려고 싸울 수 있기 때문에 가족별로 텐트 앞에 서 있도록 하고 영양제를 나누어 주었다.

집시들의 대부분이 작년에 이미 만났던지라 오랜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영양제를 다 나눠 주고 나는 어린이들에게 달려갔다.

낯익은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특히 내가 많이 예뻐하던 칸찬이 보였다. 칸찬은 팔에 화상을 심하게 입어서 작년에 만났을 때 계속 치료를 해주었던 아이였다. 나는 일부러 마스크를 내려 내 얼굴을 보여주며 칸찬에게 아는 척을 했다. 하지만 칸찬은 나를 낯설어했다. 꼬마에게 1년이란 시간은 나를 잊기에 충분할 정도로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노래가 마쳐지고 게임을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면서 돌다가 사회자가 숫자를 말하면 그 숫자만큼 모이는 게임이었다. 아이들과 웃으면서 뛰어노는 봉사자들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이 부러워 눈치 없이 아이들과 청년들 사이에 끼어들어가 함께 게임을 했다.

나이가 들면 청년들이 일하도록 하고 점잖게 뒤에 서 있는 것이 미덕이라고 누군가가 이야기했었으나 나는 참지 못했다.

나도 집시 아이들과 함께 뛰놀면서 행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누가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면서 뛰었다.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너무 좋았고 작고 까만 아이들의 손이 좋았다. 같은 편이 되어 서로를 꼭 껴안고 사회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좋았다.

설레었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설레었는지 아니면 그리웠던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가 나를 설레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웠던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집시들과의 만남은 아주 포근하고 따뜻하게 내게 다가왔다.

그렇게 나의 2020년 나의 겨울은 시작되었다.


*사실 집시들이 다시 강가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제게는 두 마음이 있었답니다. 빨리 가서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과 다시 그들에게 다가가려니 조금 부담스럽다는 마음이 었어요. 두 번째 마음은 여전히 돕는 자와 도움을 구하는 자들의 그 어색한 관계 때문이었겠지요. 혹여나 터무니없는 도움을 요구하거나 저를 돈 많아 보이는 외국인으로만 보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집시들은 저를 아픈 상처를 치료해주는 아줌마로, 자기들을 아껴주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집시들이 참 고마웠답니다.

물질적인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보다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가 만들어진 것 같아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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