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잡종 치와와를 키웠었는데 다른 사람들만 보면 너무 짖고 깨물려고 달려들어서 이름을 찬돌이라고 지었었다. 차가운 강아지라고.
동생과 나는 학교 갔다 와서 한참 놀고 나면 꼭 찬돌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만화를 보곤 했다. 찬돌이의 집은 오강을 놔두는 집 앞 수돗가 옆에 있었지만 엄마 아빠가 오시기 전까지는 포근한 이불 위나 우리 무릎 위에서 잠을 자곤 했다.
엄마 아빠가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찬돌이는 기뻐서 꼬리를 흔들었다. 나의 어렸을 적 기억에는 꼭 찬돌이가 있었다.
결혼을 하고 가족과 인도에 와서 살게 됐다. 다른 것 보다 인도에 살게 되면서 아이들이 가장 기뻐했던 것은 동물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많은 개들과 고양이들이 우리 집을 거쳐 갔다. 때로는 뱀에 물리거나 병에 걸려서 죽고 때로는 말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사랑이는 들개여서 그런지 요즘도 아주 가끔 집 근처에 들렀다 간다. 그리고 사랑이의 새끼 두 마리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경비 아저씨가 입양하셨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세 마리의 반려동물들, 바로 심바와 라씨와 미투가 있다.
심바는 우리 가족 모두의 지지를 받는 셰퍼트 개다. 무섭게 생긴 생김새와는 달리 작은 강아지들보다도 겁이 많은 심바는 우리 집의 미워할 수 없는 귀염둥이이다. 저녁이면 꼭 우리 가족의 신발 몇 짝을 물고 가서 흙 주위에 두는 고약한 버릇이 있지만 여전히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내게 두루두루 사랑을 받고 있다.
앵무새 미투는 함께 산지 4년이나 되었다. 우리 방 창문과 연결된 호텔 급 집에 사는 미투는 한국말도 잘해서 아침이면 창문을 두드리면서 말한다. “안녕하세요.” “성민아.” “현민아.” “헬로” 알람이 따로 없다. 특히 미투는 남편을 잘 따른다. 밥은 내가 주는데도 나보다 남편을 더 좋아한다. 이미 집 안의 실세를 파악한 듯하다.
마지막으로 고양이 라씨는 사연이 많다. 큐티 파이가 5마리 새끼를 낳았지만 갑작스러운 들개들의 공격으로 라씨와 캔디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 큐티 파이가 집을 나가고 자매 캔디도 사라져 버렸다. 홀로 남은 고양이 라씨. 그래서인지 전보다도 더 우리를 따른다.
심바와 미투는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지만 라씨는 조금 다르다. 남편에게 라씨는 애증의 관계이다. 남편은 라씨가 그렁그렁 거리면서 앉아 있을 때는 예뻐하지만 옆집 병아리들을 먹으려고 달려들 때나 우리 집 소파나 오토바이 가죽을 자기 발톱 다듬는 곳으로 생각할 때면 기겁을 한다.
참 하나 더 있다. 잘 차려진 식탁 위에 올라가 우리가 먹을 음식에 입을 대는 경우가 몇 번 있어서 남편은 라씨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개들은 봐. 좋으나 싫으나 주인을 최고로 생각하고 섬기잖아. 그런데 고양이들은 너무 약았어. 개들은 집을 지키고 충성스러움이 있는데 고양이는 도대체 왜 키워야 하는 거야?”
식탁 위에 음식을 먹은 고양이를 보면서 남편은 말했다. 고양이에 쩔쩔매는 아이들과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얼굴에 잔뜩 실려 있었다.
“라씨는 쥐를 잘 잡잖아. 그리고 너무 귀엽잖아. 저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어? 심바 얼굴에서 저런 표정이 나오냐고요?”
남편은 여전히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심바는 염소들을 쫓기도 하고 주인을 잘 섬기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키운다면 고양이 라씨는 섬기는 법을 배우는 거죠. 오토바이 시트를 망가트리고 소파를 망가트려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거지. 매우 교활해 보이는 모습도 사랑해 주는... 우리가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는 거지.”
“몰라. 나는 그래도 동의 못해. 고양이를 도대체 왜 키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남편은 나의 말에 기가 막힌다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그날 저녁 남편과 나는 집 앞을 걷기 시작했다. 흙길을 밟고 이슬에 젖은 풀밭을 걷는데 심바와 라씨가 계속 따라온다. 몇 바퀴를 도는데도 심바와 라씨는 지겹지도 않은가 보다.
“아니. 얘네들은 왜 자꾸 따라오는 거야. 그렇게 우리가 좋은가? 참.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네.”
남편은 우리 걸어가는 길 앞에 벌러덩 누워서 애교를 부리는 라씨를 안으며 말했다.
나는 안다. 남편의 화는 며칠을 가지 못한다는 것을. 식사를 할 때나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나 기회만 생기면 남편 무릎 위에 올라가 앉아서 그르렁 거리며 애교를 부리는 라씨를 금세 쓰다듬어 주면서 좋아할 거라는 것을.
반려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동물을 키우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저 우리 삶의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잘하던지 잘하지 못하던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진짜 반려 동물을 키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침 식사를 하려는데 성민이 현민이가 우리를 불렀다.
“엄마. 아빠. 빨리 와 봐요. 이건 꼭 봐야 돼요.”
또 호들갑이다. 아이들은 특별한 것을 보면 꼭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방 안에는 베개 위에 벌러덩 누워 있는 라씨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모여서 자기 모습을 보고 있는데도 전혀 요동하지 않고 잠을 잔다.
자기가 사람이라도 된 듯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라씨.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우리 식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