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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May 14. 2020

외국에서 김치는 힐링이죠

해외에서 김치를 대하는 자세

“엄마. 김치 좀 더 주세요.”

성민이는 밥을 먹다 말고 조금 남은 김치 그릇을 보면서 말했다.

“여보. 아니야. 김치 아껴야지. 우리 이 배추김치 적어도 6월까지는 먹어야 해.”

그러자 성민이도 지지 않는다.

“엄마. 김치 주세요. 김치 없이는 밥이 하나도 맛이 없단 말이에요.”

두 남자의 김치에 대한 논쟁을 들으면서 나는 김치냉장고 오른쪽 문을 열었다. 김치 통 뚜껑을 열고 시원한 김치 한 포기를 그릇에 담았다.

잘 썰은 김치를 가져가자 성민이와 현민이는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고. 아들이 더 중요하구먼.” 남편은 새 김치를 가져온 나를 보며 말했다.

“아직 왼쪽 김치 냉장고에 김치가 남아 있어요. 그러니까 좀 먹어도 돼.” 나는 웃으며 말했다.

성민이 현민이는 김치 없이는 한국 음식이 완성될 수 없다면서 바쁘게 젓가락을 움직였다.

남편도 그렇게 김치를 아껴야 한다더니 역시나 새로 잘라온 김치를 가장 먼저 밥 위로 가져간다.

한국에서도 김치는 한국인의 힘이지만 해외에 살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따스한 밥에 김치 하나만 있으면 모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인도 카레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하지만 며칠 연달아서 카레만 먹고 나면 시원한 김치가 저절로 생각나는 동시에 자동적으로 입에 침이 고인다. 그럴 때면 남편과 나는 서로를 보며 말한다. “캬. 여기에 김치 하나만 있으면 딱일 텐데.”


인도에 와서 3번 이사를 했는데 지금 있는 곳이 가장 시골이다. 전에 있던 곳 같으면 자동차를 타고 몇 시간 가면 언제든지 배추를 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불가능하다.

12 월 말에서 2월까지 일 년에 딱 세 달 동안 제대로 된 배추를 구할 수 있다. 그것도 자동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야채시장에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 기간에 김치를 만들어서 오래 보관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의 큰 관심사이다.

배추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무렵이 되면 남편과 나는 최대한 많은 김치를 만들어 놓는다. 일반 냉장고에 김치 냉장고까지 가득 차게 말이다.

작년에는 3월 정도에 휴가로 한국을 나갔다. 한국에 나가면 거의 한 달 정도를 보내고 오기 때문에 한국에 가기 전에 김치를 가득 만들어 놓고 갔다. 한국에서 돌아와도 맛있는 김치를 맛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에 있는 사이 천둥번개가 쳤고 집에 있는 김치냉장고가 고장 나 버렸다. 우리가 인도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김치가 먹지 못할 만큼 상해 있었다. 시다 못해 상해 버린 김치를 버릴 때의 그 마음이란. 아~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으리라.


올해도 우리는 다시 김치를 만들었다. 5월 중순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 집 김치 냉장고의 왼쪽 칸에만 김치가 남아 있다. 다음 달 정도가 되면 배추김치는 끝날 것이고 나는 배추김치 대신에 양배추 김치나 무김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도 남편도 배추김치가 있을 때는 다른 종류의 김치를 쳐다보지도 않지만 배추김치가 끝나면 또 거기에 적응해서 다른 김치들을 맛있게 먹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형태로도 인도에 사는 한국 토박이 가족에게는 김치가 꼭 필요한 존재니까 말이다.

김치를 많이 넣으려고 김치냉장고에 김치통 대신에 비닐을 깔았다


한국이 유난히 그리운 날은 아껴 두었던 한국 라면을 끓이고 시큼하게 익은 김치를 내놓는다. 유튜브로 한국 저녁 뉴스를 틀어 놓고 네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앉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는 쫄깃쫄깃한 라면을 덜어 먹는다. 그리고 매콤한 라면과 함께 시큼하게 잘 익은 김치 한 접을 입에 넣는다. 우리는 김치와 함께 한국의 맛을, 한국의 향기를 삼킨다.

‘김치 참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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