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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May 25. 2020

가족 만두 먹던 날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만두 맛

“엄마 맛있는 거 해 주세요.” 성민이가 또 주문을 한다. 큰 아이 성민이는 지금 14살, 한마디로 쑥쑥 클 나이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주문하는 것이 많다.

“엄마. 오늘은 만두. 만두 해 먹어요.” 요즘 인도에는 봉쇄령 때문에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그래서 외식을 못 한지가 오래됐다. 전에 같으면 길거리에 파는 모모(네팔식 만두)라도 사 먹었을 텐데.

“성민아. 엄마 설거지할 것도 너무 많고 부엌이 어수선해서 안 돼. 다음에 하자.”

나는 요리도 간단하고 빠르게 해 먹자는 주의였기 때문에 만두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이미 두 명의 지원군이 있었다. 남편과 현민이었다.

“여보. 내가 반죽해 줄게.” “엄마. 내가 양파 자르는 것 도와줄게요.”

그렇게 만두요리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밀가루 반죽을 하고 성민이와 현민이는 야채를 준비하고 나는 쌓여있던 설거지를 먼저 했다. 설거지가 끝나자 남편은 찰진 반죽을 위해 밀가루 반죽을 계속 치대고 있었고 현민이와 성민이는 눈이 맵다며 물안경을 쓰고 번갈아 가면서 야채 칼로 양파를 자르고 있었다. 만두를 만드는 것은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가족들과 함께해서 그런지 힘들지 않았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바로 초등학교 때 설날 모습이었다.

큰집은 안동에서 서울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문경 바로 옆에 있는 함창이라는 곳에 있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아담한 큰아빠의 집. 명절이면 아빠의 사형제가 모두 모였다.   

“큰엄마 큰아빠. 안녕하세요?”

“해옥이 왔나? 많이 컸네. 운아. 나와 봐라. 해옥이 왔다.” 큰엄마는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 주셨다. 큰엄마 집에 가면 가장 좋았던 것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사촌 언니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니를 만나서 신이 난 사이 엄마 아빠도 짐을 들고 들어오셨다.

“형수님. 잘 계셔니껴?”

“오셨어요. 삼촌네들 벌써 다 도착했어요. 서방님은 얼굴이 더 좋아 보이네요.”

“아이고. 저야 맨날 그렇죠 뭐.” 아빠는 큰 엄마의 인사말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형님. 저 왔어요.” 엄마였다.

“아. 자네 왔는가. 언능 들어와. 뭐 이렇게 많이 싸왔어.” 큰엄마와 엄마의 대화의 시작은 거의 이랬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는 큰 며느리와 작은 며느리 사이였다.

그렇게 할머니를 중심으로 4형제 가정이 모이면 큰집은 시끌벅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나는 것이 바로 저녁 식사 후였다. 삼촌들은 오랜만에 만나 대화를 나누고 우리들은 작은 방에서 놀고 있었다. 그리고 숙모들과 엄마, 큰엄마는 요리하느라 바빴다.

딱딱 딱딱 도마에 닿는 칼 소리가 온 방을 울렸다. 그리고 안주인들의 수다도 끊이지 않았다. 오후 내내 숙모들과 엄마, 큰엄마는 부침개며 잡채 거리며 내일 먹을 웬만한 음식을 거의 다 준비했다.

그리고 설 전날 저녁은 만두를 만들었다. 큰엄마는 노련한 솜씨로 밀가루를 반죽해서 치대고 있었고 숙모들과 엄마의 만두 속 준비도 끝났다.

“만두 반죽은 많이 치대야 맛있는 거라.” 큰 엄마는 온몸을 다해 반죽을 치대면서 말했다.

큰엄마의 손이 지칠 때쯤이면 삼촌들이 나섰다. “형수님. 나와 보이소. 우리가 할게요.”

만두 반죽이 다 되자 큰엄마는 말씀하셨다.

“니네도 만두 만들고 싶지. 손 깨끗이 씻고 와.”

그렇게 언니와 나 그리고 동생들도 손을 씻고 거실에 앉았다. 엄마들은 어쩜 그렇게 빨리 만두를 만드는지 우리는 마음만 급했다.

나는 어른들을 따라서 만두피를 손위에 얹고 만두 속을 꽉 채워 넣었다. 만두피 끝 쪽에 물을 묻혀 주면 만두피가 잘 붙는다고 했는데 내 것은 속을 너무 많이 넣었는지 자꾸 잡채와 야채들이 삐져나왔다.

작은 손으로 만두를 만들 던 우리들은 어느새 만두 만들기보다는 만두 속 먹는 것에 더 혈안이 되어 있었다.

찜통에 하얀 천이 놓이고 그 위에 차곡차곡 다양한 모양의 만두들이 올려졌다. 그러는 사이 여전히 큰엄마는 만두피를 만들기 위해 반죽을 밀고 있었다. 만두피는 많이 치대야 맛이 있다던 큰엄마. 그때 그 만두 맛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데는 아마 큰 엄마의 수제 만두피 덕분이 아니었을까.

만두가 다 완성될 때는 거의 밤 9시가 넘을 때쯤이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있는 찜통에서 만두 냄새가 거실을 가득 채우면 큰엄마는 잘 익은 만두를 아직 잠이 들지 않은 가족들에게 맛 보여 주었다. 따끈따끈한 만두는 오랜만에 만나서 옛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빠와 삼촌들 입에 쏙~, 만두를 만드는 건지 노는 건지 알 수 없는 아이들 입으로도 쏙~, 그리고 하루 종일 음식을 준비하느라 피곤한 며느리들의 입 속으로도 쏙 들어갔다.

그날 밤 가족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맛있는 만두를 맛보았다.   


아이들과 남편의 도움으로 만두를 완성했다. 외국에서 만든 만두라 만두 속에는 김치도 없었고(외국에서 김치는 금치니까) 당면도 두부도 없었다. 하지만 저녁 9시까지 만두를 만드는 내내 우리 가족은 웃음꽃을 피웠다. 다 익은 만두를 찜통 채로 바닥에 내려 뚜껑을 열었다.

“앗 뜨거워.” 막 익은 만두를 입에 넣던 아이들이 소리쳤다.

“얘들아. 혓바닥 덴다. 조심해.” 후후 불어가며 만두를 먹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또 잔소리를 해댔다.

“엄마. 아빠. 그래도 이 만두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엄마. 우리 인도에서 만두 장사할까요? 역시 우리 집 만두가 최고야.”

아이들의 연이은 칭찬에 남편도 나도 한참을 웃었다. 만두는 정말 맛있었다.

만두 속에는 그리웠던 한국의 향이 있었고 가족들의 웃음과 행복이 있었다.


남편의 특별 쫄깃 만두피에 참기름과 잘 버무려진 야채 속을 얹는다. 그 위에 아이들의 웃음 한 스푼을 넣고 남편의 썰렁한 농담 조금과 내 잔소리를 만두 속에 살짝 뿌려준다.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배가네 가족 만두가 완성이 된다.


한 번 먹으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정과 사랑이 담겨 있는 우리 가족 만두.

참 맛있다.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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