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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Jun 10. 2020

팔베개를 건 팔씨름

이런 팔씨름이라면 계속하고파

“엄마. 팔씨름해요.”성민이다.

요즘 따라 왜 그렇게 팔씨름을 좋아하는지 귀찮을 정도다.

“어. 엄마 설거지 끝나고.” 난 일단 미루고 본다.

“엄마. 팔씨름해요.” 성민이는 지치지도 않는다.

“어. 이것 좀 치우고.”

아무리 핑계를 대도 안 된다. 집요한 성민이는 이미 나와 팔씨름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아빠는 손가락 두 개로도 자기를 거뜬히 이기니 재미가 없고 동생 현민이는 자기 손가락 세 개로도 거뜬히 이길 수 있어서 재미가 없고.

그나마 나와는 힘이 비슷해서 재미있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팔씨름에서도 엄마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저녁을 먹고 상을 치우고 있을 때였다.

“엄마. 팔씨름해요.” 또 성민이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팔씨름을 해 주다 보니 이제는 손목이 아플 정도였다.

“야. 엄마 손목 아파. 아 힘들어. 이제는 못해. 엄마 피아노도 쳐야 하고 손을 좀 아껴야겠어.”

하지만 성민이는 졸졸 따라다니면서 팔씨름을 하자고 난리다.

“엄마. 팔씨름해 주세요. 엄마가 이기면 내가 일주일 동안 엄마 팔베개하고 잘게요.”

나는 귀가 솔깃해졌다. “팔베개?”

결국 팔베개라는 말에 나는 다시 성민이의 팔씨름 도전을 받아들였다.


아이들은 우리와 함께 자는 것을 좋아했다. 남편이 있을 때는 큰아이 성민이는 꼭 아빠 팔베개를 하고 잠이 들었고 둘째 현민이는 내 팔을 베고 잠이 들었다. 하지만 가끔 남편이 출장을 갈 때면 성민이와 현민이는 항상 내 양팔을 베고 잠이 들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성민이가 아빠가 없을 때도 내 팔베개를 하지 않고 자기 시작했다. 이제 자기는 어린이가 아니라며.  

그런데 그렇게 엄마에게서 독립한 성민이가 팔씨름을 하면 내 팔베개를 일주일이나 사용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성민이의 말투는 나를 아주 배려해준다는 식의 말투였다. 자신이 엄마 옆에서 자 준다는 것을 아주 큰 선심 쓰듯이 이야기하는 성민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나는 진심에서 조금 더 오버를 하며 말했다.

“와~~ 정말? 정말? 여보. 성민이가 내가 팔씨름에서 이기면 내 팔베개를 일주일이나 하고 잔대요. 이번에는 완전 최선을 다해야 되겠는데.”  


남편과 현민이는 흥미롭게 우리 경기를 보고 있었다.

성민이와 나는 비장한 얼굴로 거실 바닥에 엎드려 누웠다. 그리고 두 손을 잡았다.

“하나, 둘, 셋! 시~~ 작”

성민이는 온몸에 힘을 다해서 나와 경기를 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경기 때는 져도 됐지만 팔베개를 건 이상 나는 이겨야 했다.

남편은 이를 악물고 팔씨름을 하는 나를 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야. 이번에는 엄마가 이길 것 같은데.”

맞았다. 팔씨름에서 나는 당당히 우승을 성취했다. 온 가족이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꼭 내가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것만 같았다.


저녁이 되자 성민이가 내 팔베개를 베고 누웠다. 성민이는 내 팔을 베는 것이 수줍었던지 내 팔이 아닌 내 손바닥을 베고 잠이 들었다.

귀여운 녀석! 언제 이렇게 큰 거야. 아직도 어렸을 적 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시간은 지나고 아이들은 커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서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을 가고 정말 우리에게서 독립하는 시간이 올 것이다. 어쩌면 멀리 떨어져 지내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아이들이 팔베개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웃으며 보내던 이 저녁 시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힘들거나 외로울 때도 가족과 함께 했던 추억을 기억하며 용기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나는 성민이와 현민이를 번갈아 가며 꼭 안아 준다. 아이들이 귀찮다고 꿈틀거릴 때까지 아주 꽉 안아주며 말한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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