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불편함을 뒤로하고 남을 돕기
코로나 사태 속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
“여보. 인도 정부에서 타지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을 고향으로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 들었지?”
“네. 그래도 여전히 고향으로 걸어서 가는 사람들도 많던데.”
나는 상을 차리며 이야기했다.
“오늘 면장한테서 연락이 왔어. 우리 건물을 돌아온 노동자들 격리소로 사용하면 어떻겠냐고. 그래서 상의해 보고 가능한 돕겠다고 했어.”
나는 남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여보. 근데 우리 직원들이랑 이웃들이 동의할까요? 옆에 학교에서도 부담스러워할 텐데.”
남편은 당연히 동의할 거라 생각했던 내게서 우려의 대답을 듣고는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당연히 도와야지. 이럴 때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내일 직원들과 이야기해 보려고.”
나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복잡했다.
나는 우리 가족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웃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잘 가져왔던 이웃들과의 관계에 금이 가지는 않을까 나는 그것을 더 우려하고 있었다.
남편은 확고했다. 우리도 다른 지역을 가거나 한국에 돌아가면 격리되어야 하고 우리 가족들이 격리되어야 할 수도 있는데 그때 모두가 들어오지 말라고 이야기한다면 얼마나 가슴 아프겠냐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당연히 도와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날 아침 남편은 직원들을 불러 놓고 이야기했다. 모두 가까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동의가 가장 먼저 필요했다. 한 가정은 건강상의 이유로 노동자들이 오면 다른 친척 집에 가서 지내고 오겠다고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동의했다.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편은 진심을 담아 그들을 도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기에 몇 시간의 회의 끝에 직원들은 노동자들을 수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면장에게 연락을 하고 최대한 빨리 우리 건물을 방문해서 사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약속까지 받았다.
그날 저녁 남편과 나는 여느 날처럼 밥을 먹고 산책을 했다. 집 앞을 크게 돌고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인도에서는 음식을 제대로 주지 않아서 사람들이 격리소에서 도망간다는 뉴스도 있었잖아. 나는 이곳에 몇 명의 노동자들이 올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과일도 제공해 주고 싶고 필요한 것들을 도와주고 싶어.”
남편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그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이제껏 이웃들의 반대를 걱정했던 나 역시 내 속에 있던 진심을 이야기했다.
“맞아요. 그 사람들이 있을 곳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서 또 돈이 없어서 가족들과 함께 고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데 나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주위에서 반대하지만 않는다면 나도 돕는 것에 진짜 찬성해요. 얼마나 힘들겠어요.”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들떴다. 우리는 노동자들이 올 경우 어떻게 그들을 도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을 때였다. 아이들과 잠잘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밤 9시가 훌쩍 넘은 시간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 밖에는 스무 명이 넘는 건장한 남자들이 마스크를 끼고 집으로 오고 있었다.
‘어? 벌써 노동자들이 왔나?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텐데.... 그럼 누구지?’
나는 남편을 불렀고 때 마침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띵동~~”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을 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 이웃들이었다.
어떻게 모였는지 스무 명이 넘는 분들이 그 늦은 밤에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걱정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사람들이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남편은 문 앞에 나가서 사람들 앞에 섰다. 그리고 나는 문에 기대서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이웃들은 우리가 우리 건물을 타지에서 오는 노동자들을 격리시키는 곳으로 사용할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모두 그것에 반대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들은 집에 계시는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걱정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올 경우 수많은 가족들이 그들의 음식을 전해주러 올 것이며 사람들로 붐빌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인도 정부는 다른 곳에서도 격리자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고 도망가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차분하게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런 일들은 충분히 우리가 상의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노동자들은 확진자가 아니고 테스트를 받고 기다려야 하는 격리자라고 설명했다.
혹시 확진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건물 밖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마지막으로 그들이 우리 가족일 수 있고 우리가 그들처럼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어려운 상황에 우리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뜻깊은 이야기라고 그들을 설득했다.
사실 우리를 찾아온 이웃들은 이곳에서 적어도 100미터에서 5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봉쇄령 때문에 사람들은 거의 바깥 활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은 이미 그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있었다. 만나지 않아도 자기네 동네에 격리자들이 오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그들도 우리의 이웃이고 우리의 가족인 것을...
이미 우리는 그들의 에게 죽음을 몰고 오려는 외국인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우리가 당신에게 협박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 그냥 우리의 의견을 표현하러 온 거예요. 하지만 우리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는데 당신이 이것을 허락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허락을 한다고 면장에게 이야기한다고 해도 우리는 다시 반대 성명을 내서 못하게 할 거예요.”
사람들은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었다. 밤 열 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마스크를 쓰고 모인 건장한 남성들은 이웃이 아니라 어둠의 조직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힘없는 외국인이었고 이 일을 이웃들의 동의 없이 추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코로나 사태에 아주 작은 도움이 되고자 했던 남편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직접 병원에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렇게라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던 남편은 많이 실망한 모습이었다.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그 사람들이 코로나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너무 많이 가져서 그래. 가족들을 걱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고. 다른 방법이 있겠지요.”
며칠 뒤 시내로 야채를 사러 가는데 학교 건물 바깥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격리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음식을 전하러 온 가족들인 것 같았다. 남편과 나는 씁쓸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며칠 뒤 조용했던 시골 마을에 4명의 확진자 소식이 들렸다. 모두 타지에서 돌아온 노동자들이었다. 그날 밤 우리 집에 찾아왔던 사람들 중에는 이쪽에 격리소를 만들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그들을 돕지 못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다.
정말 그날 밤 우리 집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 중에 단 한 명도 노동자들을 도우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없었던 걸까?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며칠 뒤 시내를 갔다 온 남편이 내게 말했다.
“방금 전에 한 분을 만났는데 이렇게 말하더라. 그날 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결정해서 자기도 어쩔 수 없이 온 거였지만 사실 자기는 노동자들을 돕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의 무거웠던 짐이 녹아드는 느낌이었다.
아주 적은 인원이어도 누군가를 도우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로받았다.
처음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한국에서도 격리소를 정하는 것에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그 지역에서 따뜻하게 해외 입국자들을 받아주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나의 불편함과 두려움을 넘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인지 그리고 얼마나 값진 마음인지 생각했다.
*현재 인도 확진자는 207615 명으로 세계 7위를 기록하고 있어요. 저희는 지역 분들을 위해 직접적으로 격리소를 제공하지는 못했지만 정부가 제공하지 못하는 과일 등을 준비해서 드리려고 해요. 그리고 가접적으로라도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서요. ^^
남을 돕는 일인데도 참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