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전환
한동안 바쁘게 살았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업무가 정지될 것만 같았지만 그 속에서도 할 일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기에 아침은 더 바빠졌고 저녁은 피곤해서 금방 잠이 들어버렸다.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느꼈지만 일주일에 이틀은 지역별 봉쇄가 있었기 때문에 나갈 곳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봉쇄가 없어도 어디 나가서 앉아 있을 방법은 없었다. 인도는 그만큼 코로나 19가 심하니까.
그래도 코로나 19로 받은 혜택이 있다면 바로 아이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것이다. 나는 같은 업무를 하지만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함께 운동하고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어제저녁도 캄캄한 우리 마을 길을 아이들과 함께 걸었다. 길에 가로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두운데 남편도 나도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왔다. 그래서 어두 컴컴한 밤길을 빛도 없이 네 가족이 걸어갔다.
현민이가 말했다.
"아빠. 왜 핸드폰 안 가지고 왔어요. 소똥 밟겠어요."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잘 봐봐. 소똥 정도는 보여."
성민이와 나는 둘의 대화를 듣다가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사실 소똥 정도는 보이는 달빛이었다.
한참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집 가까이에 있는 변전소에서 섬광과 함께 펑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마을 전체가 정전이 되었다.
다행히 큰 폭발은 아니었다.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집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정전이 되어 더 깜깜하기도 했지만 최근 레바논에서의 폭발 장면을 봤던 터라 변전소 더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지역은 정전이 아주 자주 있다. 그래서 우리 집에도 따로 전기를 충전해 놓는 인버터 배터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며칠 전 그 배터리가 고장 났다. 그래서 집은 캄캄했고 더웠다.
우리는 그래도 선풍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인버터 배터리가 있는 오피스에서 잠을 자기로 결정했다. 모두 각자가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매트를 챙겼다.
집과 오피스의 거리는 걸어서 5분도 채 되지 않는 곳인데 이유 없이 설렜다.
캠핑을 가는 느낌도 들었고 뭔가 외박을 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요즘 한창 쓰지 않았던 일기장도 챙기고 글도 쓸려고 컴퓨터도 챙겼다. 꼭 여행을 갈 때 평소에는 쓰지 않던 마스크 팩과 마사지용 크림 등을 챙기는 나의 습관과 비슷한 것이었다.
익숙한 곳에서 잠시 떠나 있는 것. 아마 그런 설렘이었는지 모른다. 매일 가는 오피스인데도 밤에 식구들이랑 그곳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꼭 여행을 가는 기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집을 나서려는 순간 전기가 들어왔고 우리는 시원 섭섭하게 짐을 모두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아까의 설레는 오피스 여행(?) 준비 덕분인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저녁 예배를 드리고 아이들과 남편이 수다를 떠는 동안 나는 조용히 옆에 누워서 다이어리를 정리했다. 물론 금세 졸음이 몰려와 많은 것을 적지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다.
원래도 내가 사는 곳에는 카페라던지 제대로 된 음식점이 없다. 그만큼 시골이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모든 음식점은 문을 닫았고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모두 부담스러워하고 있으니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갑갑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유튜브에서 나오는 카페 재즈 음악을 하나 틀어놓고 오피스에서 일을 시작했다.
컴퓨터에서 들리는 재즈 음악 하나로 같은 공간인데도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내가 그렇게도 그리워하는 한국의 카페에 앉아 일을 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저 친구들과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촉촉한 케이크만 있으면 딱이겠다.
그러고 보면 모든 일에 너무 실망만 할 필요는 없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시도해 본다면, 그리고 나의 시각만 바꾸어 본다면 또 다른 환경이 펼쳐질 것이다.
가령 재즈 음악 하나로 인도에 있는 사무실에서 한국의 카페를 느낄 수 있고
작은 전기 램프 하나로 운치 있는 방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나를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이제 차 한잔 마시면서 브런치 글들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