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내 무릎에서 잠들고 방청소를 할 때 빗자루를 따라다니며 장난치며 자란 우리 고양이다.
하지만 인도 고양이들은 자유롭다. 한국처럼 방 안에서만 키우지 못한다. 자기들이 원할 때는 밖에서 놀고 때로는 숲 쪽으로 사냥을 하러 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도마뱀이나 생쥐 메뚜기 같은 거)
그래서 예전에 키우던 몇 마리의 고양이들도 사냥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뭐 다른 고양이와 새 살림을 차리러 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사실 고양이들에게 많은 정을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떠나면 많이 아프니까.
어디서든 잘 자던 라씨
라씨도 어렸을 때부터 우리를 잘 따른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만지려 하면 싫어할 때도 있었고 도망을 가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가 라씨가 달라졌다. 아마 라씨가 임신을 했을 때부터였나 보다. 우리가 어디를 가던지 따라왔다. 사무실에 가면 사무실 문 앞에 앉아 있고 교회를 가면 교회 바깥 창문틀에 앉아 있었고 산책을 가면 산책을 따라왔다. 갑자기 변한 라씨가 어색할 정도였다. 하지만 까칠한 듯 우리만 따라다니는 라씨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한 번은 새벽 기도를 한다고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내 등위에 사뿐히 올라가 그렁거리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라씨는 말 그대로 개냥이가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라씨의 배가 점점 불러왔다. 밤이면 자주 나가서 사냥을 하고 아침이 되면 돌아오던 라씨도 이제는 집 안에서 잠을 자곤 했다. 그리고 시간만 있으면 집구석 구석을 다니며 새끼 낳을 곳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집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던 라씨. 그런 라씨를 위해 큰 과일 박스를 준비해 주었다. 박스 안에는 폭신한 이불도 깔아주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라씨는 이곳저곳 집을 탐색했다.
그날 아침은 라씨의 우는 소리가 이상했다.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목소리였다. 아니 예전에 라씨의 엄마 큐티 파이가 새끼를 낳을 때 들려주었던 소리와 비슷했다. 라씨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 우리 집 차 뒤편에다가 새끼를 낳아서 우리가 급하게 박스를 만들어서 집 안으로 데리고 왔었다. 하지만 라씨는 우리와 함께 있었다.
바로 아이들 방에.
라씨의 배는 꿈틀거리고 있었고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있었다.
"엄마. 고양이 엉덩이에서 피가 나와요."
현민이었다. 성민이는 박스를 방으로 가져오고 급하게 라씨를 박스 안에 넣었다. 정말 현민이 말대로 양수가 터진 모양이었다. 라씨는 계속 울었다. 나는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서 라씨의 배를 계속 만줘줬다.
"괜찮을 거야. 우리 라씨 잘한다. 예쁘다."
성민이 현민이도 침을 꼴깍 삼키면서 라씨를 보고 있었다.
고양이를 제대로 키운 지 5년이 되었지만 우리 눈 앞에서 새끼를 놓는 고양이는 처음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고양이들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 새끼를 낳는다고 했고 혹여나 사람들이 새끼를 보게 되면 직접 새끼를 죽여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라씨는 달랐다. 라씨는 우리를 완전히 신뢰하는 듯 보였다.
현민이 성민이도 라씨가 새끼 고양이들을 잘 출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보고 있었고 나도 라씨의 배를 계속 쓰다듬어 주었다.
첫 아이를 낳을 때 엄마가 내 곁에서 내 배를 만져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꼭 내가 라씨의 엄마가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3시간에 걸쳐 라씨는 4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라씨처럼 모두 오렌지 색이었다. 꿈틀거리는 새끼의 탯줄을 모두 먹고 피 묻은 아기 고양이의 몸을 깨끗하게 핥아 주는 라씨는 어느새 어엿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말하나 통하지 않는 고양이 라씨와 우리 가족에게도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전해지고 있었던 걸까.
라씨를 생각하는 우리 가족의 마음이 라씨에게 전달된 것처럼.
가장 힘든 출산 때도 우리를 의지하는 라씨의 마음이 우리에게 전달된 것처럼.
이렇게 라씨와 진짜 가족이 되어가나 보다.
*새끼들이 태어난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가장 약했던 아기 고양이 한마리가 죽었습니다. 그래도 남은 세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