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강물에서 만난 너
오랜만에 강가에 왔다. 부탄에 있는 높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어서 그런지 이 강의 물은 더욱 차게 느껴졌다. 강 저편으로 부탄의 높은 산이 보인다. 너무 높아 구름으로 덮여진 봉우리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햇볕 한 번 보기도 힘들 것만 같다.
함께 온 식구들이 신이 나게 논다. 서로를 물속에 빠트리기도 하면서 강가에 있는 모래들을 던져가며 논다.
강가에 올 때면 나이 많은 어른들도 어린아이가 된다. 강 밖에서 품위를 지켜야 했던 규율들과 체면 등은 모두 옷과 함께 벗어 놓은 것처럼 아주 신이 나게 논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마음 놓고 놀겠냐고 후회하지 말고 놀자고 서로 작정한 것만 같다.
그래. 다시 옷을 입고 일상생활로 돌아간다면 우린 지켜야 할 것들도, 생각해야 할 것들도, 고민해야 할 것들도, 배려해야 할 것들도 너무나 많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기 싫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젖은 몸을 말리려고 모래밭에 앉았다. 모두가 물속에서 자유를 느끼고 있다면 난 조용한 강을 바라보며 자유를 느끼고 싶었다.
멀리서부터 세차게 내려오는 물들이 조금씩 나누어지고 힘을 잃어서 내가 앉아 있는 물가 앞에서는 잔잔한 물결만 연출하고 있었다.
모래들이 물결에 부딪혀 만든 여러 가지 모양들.
물속의 작은 차밭 같기도 했고 고흐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 작품 속 밤하늘 같기도 했다.
강가 가까이에 있는 모래들은 물결이 움직이는 대로 자신들의 모양을 바꾸었다. 강 깊은 곳에서 자신들만의 모양을 만들고 있는 자신감 가득한 흙들과 돌들과는 달랐다.
얕은 강가의 모래들은 움직여야 했고 물결에 부딪혀야 했다. 때론 원하지 않아도 내려가야 했고 때론 올라가야 했다. 약하게만 보였고 물결에게 매번 당하기만 하는 실패자들 같았다.
하지만 그 어려운 부딪힘을 견딜 때 마다 얕은 물속의 모래들은 멋진 예술을 만들고 있었다. 난 모래들에게 속삭였다. ‘실망 하지 마. 원치 않아도 또 움직여야 하고 뒤 섞여야 해도 슬퍼해 하지 마. 옆에 있던 친구들을 잃어버리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 부딪쳐야 해도 너무 힘들어 하지 마. 지금 너희들의 모습은 점점 더 멋진 모습으로 변하고 있으니까. 누구도 표현 못하는 멋진 예술작품이 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너희를 보며 이렇게 용기를 받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물결은 여전히 움직이고, 내 속삭임에 고맙다고 인사 하듯이 물속의 모래들이 햇빛에 빛나 반짝 반짝 윙크를 한다.
강가에 앉아 물속 모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물속 모래들이 나 같고 내가 물속 모래들 같다.
그래. 누군가는 흔들리고 부딪히는 나를 보며 위로를 받겠지. 그리고 누군가는 내게 말해 주겠지.
‘괜찮아. 넌 지금 네가 생각 하는 것보다도 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어. 실망하지 마. 너를 보며 내가 용기를 얻고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