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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Sep 11. 2016

어느 노부부와 함께한 작은 음악회

추억을 연주하는 그를 만났을 때

 

아이들에게 리코더를 가르쳐 주는 날! 토요일은 나에게는 가장 바쁜 날이자 가장 행복한 날이다.

그날도 오후에 리코더 수업을 마친 후 남편과 함께 집이 아닌 은퇴하신 한 할아버지 목사님 집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벌써 몇 주 전부터 교회에서 나를 볼 때면 나에게도 리코더를 사다 달라고 또 리코더를 사다 드리니 나도 꼭 배우고 싶다고 여러 번을 이야기 하시던 분이었다. 나이 많으신 노부부를 아이들이 많은 리코더 수업에서 가르치기가 뭐 해서 직접 그 집에 찾아간 것이었다.

학교 뒷길에 펼쳐진 큰 나무들 사이를 달려가면 하얀 벽에 주황색 줄을 쳐 놓은 노부부의 집이 나온다.

“안녕하세요?”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아무런 응답이 없다.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나서야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손 펌프질을 해가며 쌓인 설거지를 하고 있는 그녀.

내가 좀 도와드리겠다는데도 굳이 혼자 하신단다.

우리가 오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와서 그런지 할아버지 목사님은 낮잠을 자고 있다고 했다. 오기만 하면 두 분께 리코더를 가르쳐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내 실수다. 그분들께도 그분들만의 스케줄이 있는 것을.

그럼 일요일 오후에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집을 나오려는 순간 억수 같은 소나기가 쏟아진다.

오토바이를 타고 왔던 우리는 결국 그 집 안에 까지 들어 가야했다. 할아버지도 쏟아지는 소낙비 소리에 잠이 깨서는 바깥에 널어놓은 옷들을 안으로 들여 놓기 위해 바깥으로 나왔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리코더 가르쳐 드리러 왔어요. 주무신다고 그냥 갈랬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

“아. 고마워요. 드디어 리코더를 배우게 되네. 여보. 리코더 어디 있지? 리코더 가지고 음악 방으로 와요.”

신이 난 할아버지 목사님. 다리를 절뚝거리시며 걸으시는 그분의 다리가 오늘은 좀 더 가벼워 보였다.

옛날부터 음악을 사랑하던 할아버지는 찬양대 지휘까지 할 정도로 활동적인 분이셨다. 이제는 은퇴를 하신 후 꼬마 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하숙을 하시면서 살아가고 계셨다. 모두 시집을 가서 일 년에 한번 정도도 얼굴 보기 힘들 정도로 바쁜 삶을 살아가는 세 딸을 가진 아버지이자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뒤 따라가며 모든 아버지들의 삶이 그런 것인가 생각했다.


창고 같은 곳을 개조한 음악 방으로 들어서자 여러 가지 악기들이 보인다. 전자음반, 트럼본, 바이올린.

모두가 할아버지가 젊었던 시절 연주하던 것이란다. 트럼본은 할아버지가 어렸을 적 인도에 왔던 외국 선교사가 두고 간 것을 자기가 산 것이라고 이야기 하시는데 도대체 몇 해 전인지 손발을 다 동원해도 계산할 수 없었다.

요즘 나오는 금박 씌운 은박 씌운 반짝이는 트럼본을 기대했었는데 벽에 걸려있는 트럼본의 모습은 정말 오래 된 영화에서나 나올 만한 그런 골동품이었다.

럼본을 한참 보고 있자 할아버지는 다시 아주 또 아주 오래 된 바이올린을 꺼내신다. 색이바랜 바이올린 가방 안에서 나오는 바이올린은 그 모양이 지금 것과 다를 것이 없었지만 오래된 나무의 느낌. 그 바이올린은 세월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음악 방 구경을 마치고서야 리코더 수업이 시작 되었다.

“목사님. 여기 뒷부분은 엄지손가락으로 막으셔야 하구요. 처음 낮은 도를 부르실 때는 아주 살살 바람을 넣으셔야 해요. 아니면 이상한 소리가 나요. 그리고 여기 작은 구멍 보이죠? 작은 구멍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으면 이상한 소리가 나요.” 난 아이들을 가르칠 때처럼 할아버지에게 친절하게 설명했다.

함께 앉아계시던 할머니도 그리고 할아버지도 아주 진지하다.

설명이 마치고 리코더를 부는 연습을 시작했다. 나이 들어 뻣뻣해 진 할아버지의 손으로 리코더 구멍을 막으려니 여간 힘이 드시나 보다. 바이올린도, 트럼본도, 피아노도 연주 하셨던 그분의 손도 이제는 새로운 것을 배우기에는 나이가 많이 들었나 보다. 마음에 비해 몸이 따라주지 않자 실망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와. 그래도 정말 멋지셔요. 사실 한국에서는 어린이들만 리코더를 배우는데 나이 들어서도 배움의 길을 포기 하지 않으시니 말이에요. 연습하시면 금방 괜찮아 지실 거예요.”

어린 선생의 말에 용기를 얻으셨던지 주 중에 더 많이 연습 하겠다며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보이신다.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 리코더를 내려놓으시더니 바이올린을 집어 드신다.

그러고는 같이 노래 부르자며 찬미가를 연주하시는 할아버지.

때로는 백발의 평범한 연주자가 그 어떤 연주자들 보다도 멋져 보이기도 한다.

바이올린 소리 역시 흘러간 시간처럼 오래 된 추억처럼 오래 된 라디오에서 들리는 잡음들이 가득한 소리였지만할아버지의 얼굴과 그의 자세만은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가 못지않았다.

리코더를 배울 때 그렇게 뻣뻣했던 손은 어디로 갔는지 바이올린 줄 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의 손을 보고 있노라니 찬양대를 지휘 하던,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그리고 트럼본을 연주하던 할아버지의 젊었을 적 모습을 보고 있는 것 만 같았다.

 이제는 누구도 그에게 음악을 연주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몇 몇 사람만이 그가 음악을 연주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만 그는 여전히 음악을 연주하고 음악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날 일기장에 끄적여 놓은 작은 음악회의 모습

남편은 가지고 갔던 리코더를 함께 연주하고 나는 전자 건반으로 피아노를 연주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옆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작은 창고 음악 방 안에서 우리는 어느 오케스트라 부럽지 않은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젊었던 그 시절을 추억하고 그들의 추억을 함께 나누는 우리의 작은 음악회에 박수를 보내듯이 어두워진 하늘은 여전히 장대 같은 소낙비를 내려준다. 그리고 우리의 음악 소리는 조용히 하늘을 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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