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 첫 발을 담그는 작은 소 처럼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강가에 앉았다.
식구들과 지인들은 물속에서 또 모래밭 위에서 뛰어 논다.
넓게 퍼져 세차게 내려오는 물줄기가 모래밭을 지나면서 또 자갈돌들을 지나면서 속도를 줄인다.
난 물 가에 앉아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간간히 다리 위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쳐다본다.
아이 둘을 키우는 나에게 혼자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그야 말로 금 같은 시간이다. 그래서 그런지 하늘이 더 맑아 보이고 물이 더 맑아 보인다.
해가 이제 시간이 되었다며 불그스름한 빛을 내뿜으며 뉘엿뉘엿 산 너머로 고개를 숙이려 하자 모두가 바빠진다. 길을 가는 사람들도, 물놀이를 하던 사람들도, 그리고 물가에 소들을 풀어 놓은 주인들도 모두가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그리 깊지 않은 물줄기를 건너면 반대편 땅이 나온다. 그곳에서 한 아주머니가 소들을 몰고 강을 건너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아침이면 소나 염소들을 풀을 먹을 수 있는 곳에다가 데려다 놓았다가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쯤 이면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온다. 아마 이 강가는 풀도 있고 시원한 물까지 있으니 이 소들에게 딱 맞춤 휴식지였나 보다.
하루 동안 삶이 꽤나 힘들었었던지 그녀의 얼굴은 피곤이 몰려있었다. 지친 그녀 얼굴을 보지 못했는지 소들이 그녀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허벅지까지 차는 물 깊이에 소들이 머뭇거린다. 분명 아침에 그 강을 건너서 반대 편으로 갔을 텐데 말이다.
다른 소들이 강을 건너기 시작하는 사이 한 마리는 기어코 그 강을 건너고 싶지 않은지 주인이 뒤에서 소리를 지르는 대도 머뭇거리기만 한다. 멀지만 그 소의 겁에 질린 듯 한 눈이 너무 슬퍼 보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난 그 소를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봤다.
모두가 용감하게 지나가는 그 길을 무엇이 그리 무섭다고 주저하는지 답답해 보이면서도 왠지 그 소의 마음이 내 마음 같았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인도로 오는 비행기에서 심한 난기류를 만나 비행기가 크게 흔들리고 몇 번의 추락할 뻔 한 순간을 겪은 적이 있다. 워낙 겁이 많았던 난 그날 이후로 비행기 공포증을 가지게 됐다. 그날 이후로 가끔 나가는 한국 여행도 그리 달갑지 않았다. 길만 있다면 육로로 한국에 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때의 그 경험이 나를 사로잡았고 나쁜 기억만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어쩌면 얕은 강을 건너야 하지만 두려움에 머뭇거리고 있는 그 소의 모습처럼 난 여전히 그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미움 받을 용기에서 그 철학가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이런 감정 또한 내가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이런 불안이나 공포를 자꾸 만들어내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여전히 그 두려움을 자꾸 끄집어내고 머뭇거리고 있다. 저 강가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소처럼.
얼마 시간이 지났을 까? 주인의 성화에 못 이겨서 인지 아니면 주인이 내리치는 나무작대기 끝의 아픔 때문인지
아니면 함께 있던 소들이 주는 응원 때문인지 조금씩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래. 잘한다. 그렇게 용기를 내야지.’
그 소가 내 대신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다는 생각에서 인지 난 그 소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소를 응원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만의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웃음거리가 될까봐 마음속 깊이 숨겨 놓은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저 작은 소가 강을 건너는 것처럼 흔들리는 강물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발걸음을 떼는 저 소처럼 용기를 낸다면.
점점 더 커지는 그 두려움에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 있게 그 두려움에 맞설 수 있다면.
분명 우리를 짓누르는 거인 같은 두려움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강물을 다 건너 다리 위로 올라가는 소들 사이에서 그 작은 소의 모습이 보였다.
여유롭게 걸어가는 그 소의 모습이 왠지 더 의젓해 보였다.
더 사랑스러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