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밥솥은 몇 년 전 어머님께서 자신의 아파트 재활용 코너에서 주워오신 밥솥이었다. 아직도 쓸만하다며 필요하면 가져가라던 어머니의 배려 덕분에 우리는 이 밥솥을 인도까지 가지고 왔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정말 잘 사용했다. 지금은 밥솥 안쪽 뚜껑과 안에 밥통이 거의 사용 불가 정도로 버꺼져있고 밥솥 안쪽 뚜껑에 달린 커버는 이미 떨어진 지 오래다. 밥솥을 열 때마다 스프링이 나와서 다시 끼워야 밥이 된다. 사실 한국이라면 이미 버려야 했을 상태이나 고치고 또 고치며 쓰고 있다. 그렇다고 돈이 없어서 새 밥솥은 못 산 것은 아니다. 인도에는 전기 압력밥솥이 없어서 그나마 낡은 이 밥솥이 우리 가족에겐 마지막 희망이었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이 년째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있어 밥솥을 새로 살 수도 없다.
그런데 이 밥솥이 또 고장 났다. 이곳에서는 전기가 불안정하여 전자제품들이 자주 고장이 난다. 그냥 사용할 때는 매번 이 오래된 밥솥 내가 빨리 버려야지 했었는데 막상 고장이 나니 아쉬운 건 나였다. 날아가는 인도 쌀을 그나마 맛있게 요리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낡고 볼품없는 밥솥이었으니까.
그래서 아쉬운 맘에 다시 전기 수리 아저씨에게 맡겼다. 우리 집 오래된 냉장고도 벌써 몇 번이나 고쳐준 아저씨. 며칠 뒤에 오라고 해서 오늘 밥솥을 찾으러 갔다. 아저씨는 다 고쳤다며 밥솥을 내주며 머쓱하게 웃었다. 아니 이 웃음의 의미는? 그 머쓱한 웃음과 함께 아저씨는 밥솥 윗부분을 보여줬다. "아니... 오늘 아침에 손바닥 보다도 큰 쥐가 있어서 봤더니 이 부분을 갉아먹은 거예요. 허 허 허. " 나는 밥솥 수리하면서 전기에 녹았나 했었는데 생쥐라니.. 생쥐는 밥솥 뚜껑 부분뿐만 아니라 전선도 얼마 갉아먹었다. "그래도 이제 전원은 들어와요." 아저씨가 말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생쥐가..." 남편은 기가 막혀 웃었다. 나도 할 말이 없어서 웃었다. 그렇지. 이 상황에 웃어야지. 뭐라 하겠는가? 아저씨 탓을 할까 생쥐 탓을 할까. 아저씨의 가게에는 텔레비전부터 시작해 수많은 물건들이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내 밥솥을...
생쥐야. 플라스틱이 뭐가 맛있다고 밥솥 뚜껑을 갉아먹었니? 그래도 물 건너 온 거라고 특별한 맛을 기대한 것이야?
안 그래도 오래된 밥솥은 이제 영광의 상처까지 생겼다. 캬~ 끝까지 우리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한국산 밥솥이여. 조금만 더 버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