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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Apr 13. 2021

가슴 뭉클, 한국. (ft. 자가격리)

2년 만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거의 매년 한국을 방문하던 우리 가족은 작년 코로나로 2년간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달 말 드디어 한국에 왔다.

손자들을 그리워하시던 홀로 사시는 어머님을 만나 뵙기 위해서, 아이들 여권을 갱신하기 위해서, 인도에서는 수리할 수 없는 전자제품들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그리고 가족들이, 한국이 그리워서 한국을 방문했다.

코로나 시기에 한국 방문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도와 한국을 엮는 전세기가 있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두바이를 경유해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물론 우리는 비행기를 여러 번 타고 오느라 코로나 검사만 3번을 했다. 그래서인지 세 번의 코로나 음성 결과를 받은 우리는 한국 도착해서 코로나 검사를 할 때 아무 걱정도 부담도 없었다. 그리고 네 번째 역시 음성이었다. "우리 코로나 음성 판정 4번이나 받은 가족이야~~~!!"

인도에서 코로나 검사받기

아마 우리는 자가격리가 풀리기 직전 코로나 검사도 베테랑처럼 여유롭게 검사를 받지 싶다.


인도 공항과 한국 공항은 큰 차이가 있었다. 사실 인도는 코로나 확진자가 많지만 인도 내부에서는 규제가 거의 풀렸다. 그래서 우리 집 근처의 지역 공항에 들어가는데도 줄 서서 들어가야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항을 이용하고 있었다.  

공항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인도 사람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한국 공항은 비행기도 많이 없었고 사람들도 많이 없었다. 한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방호복을 입은 공항 직원들이 절차들을 안내해 주었고 긴장감마저 맴돌았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코로나 검사증명서를 제출하고 핸드폰에 자가격리 앱을 다운로드하자 입국이 가능했다.

짐을 찾아 나와서도 안내하시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개인 자동차로 집에 가거나 우리처럼 해외 입국자 공항버스표를 끊어야 정해진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버스가 자주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2시간을 공항 로비에서 기다렸다가 시간이 되어 표를 안내하시는 분에게 보여주고 나서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밤 9시가 다 된 시간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국 첫 공기가 얼마나 싸늘하던지. 아이들도 나도 팔짱을 끼고 동동거리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지금 인도는 30도가 훌쩍 넘는 여름이다.)


해외 입국자 전용 공항버스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 버스를 운전하시는 기사 아저씨도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아저씨에게 버스표를 보여주고 앉으려 하자 운전기사 아저씨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자리가.... 아. 앞자리네요. 네. 번호대로 안 앉으셔도 됩니다. 최대한 뒤쪽으로 가주세요."

공항에서 버스표를 끊을 때 아이들 멀미하지 말라고 앞자리를 끊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제 금방 해외에서 입국한 사람이 운전기사 아저씨 바로 뒤에 앉아 간다는 것이 분명 아저씨에게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눈치 없이 앞자리를 끊다니. 그렇게 우리 가족은 제일 뒤쪽에 앉아서 집으로 향했다.

정해진 장소에 도착한 우리 가족과 다른 해외 입국자들은 각자 목적지를 향해 준비된 차량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는 동사무소에서 준비해 준 작은 학원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작은 학원 버스 기사 아저씨도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운전기사와 우리 사이에는 두꺼운 비닐로 막혀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이 많으시네요. 한국은 정말 코로나 전쟁이네요." 남편이 아저씨께 말했다.

아저씨는 웃으면서 남편의 말을 받아쳤다.

"뭐 어디 아닌 나라도 있나요?"

"아. 인도는 지금 규제가 다 풀렸거든요."

운전기사 아저씨는 늦은 밤이었지만 불평 없이 우리를 집까지 데려다주셨다. 집에 도착한 후 연거푸 감사하다고 인사드렸다. 이렇게 남을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에 감사했고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우리의 2주간의 자가격리가 시작되었다.

다음날 보건소에서 나와서 코로나 검사를 한번 더 하고 코로나 자가격리 때 필요한 물품들과 쓰레기 봉지 안내 책자들까지 잔뜩 선물로 주고 갔다. 아~~ 한국. 이렇게 따뜻하게 맞아주다니.


자가격리를 한 지 3일 정도 되었을 때 보건소 정신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자가 격리 잘하고 계시죠? ** 보건소 정신센터예요." 

"네. 저희 가족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많이 답답하시죠? 어떻게 소화 안되시거나 많이 답답하시거나 우울하시거나 어려운 점은 없으시고요?"

" 아., 아뇨. 괜찮아요."

그러자 남편과 아이들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소리친다.

"저희 밖에 나가질 못해서 소화가 안되고 머리가 아프고 그래요. 이러다가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아요."

우리 집 남자들의 아우성에 보건소 상담 선생님도 웃음을 터트렸다. 보건소 선생님도 웃고 우리 가족도 웃고.

"그래도 가족분들이 참 밝으시네요. 잘 견뎌내실 거예요. 혹시 많이 힘드실 때는 저희한테 연락 주세요. 저희가 상담해드릴게요."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캬~~~ 이게 대한민국이지. 타국에서 살면서 느꼈던 서러움들이 싹~ 가시는 것만 같았다.

배려와 친절이 곁들여진 상담 선생님의 말투 안에서 자가격리의 답답함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형. 자가 격리 며칠 남았지? 응 아마 5일?

이제 자가격리 다섯 손가락을 남겨두고 있다. 처음에는 많이 답답하더니 이제는 집 안에서 나름대로의 정해진 시간대로 하루를 지내고 있다.

남편은 여전히 인도에 있는 직원들과 연락을 하면서 회의를 하고, 아이들은 인도 누나 형아들에게 화상 통화를 하거나, 한국어 책을 오랜만에 읽고, 나는 컴퓨터를 켜고 밀렸던 일들을 하고 있다.

처음 하루 이틀 이유 없이 다투던 아이들도 이제는 조금 차분해졌다.

이렇게 자가격리도 지나가는구나 싶다. 그저 우리 가족의 낙은 가끔 창문으로 한국의 햇볕을 느끼고 한국의 공기를 마시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가.


시간에 상관하지 않고 코로나를 막기 위해 자기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모든 분들께 참 감사하다. 그분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서 일상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자가격리를 위해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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