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나이 한인회
인도에 코로나가 가장 심각할 때 우리는 한 달 반의 한국 휴가를 끝내고 인도로 들어왔다.
뉴스에서는 산소 공급기가 부족한 인도 상황에 대해 계속 보도하고 있었고 지인들은 인도에서 한국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꼭 들어가야 하냐고 물어왔다.
그때마다 남편은 웃으며 대답했다.
"한국으로 나오는 분들보다 거기에 계속 계시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은 걸요."
맞는 말이었다. 한국으로 나올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인도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도 후자에 가까웠다.
인도로 출발하는 날. 텅 빈 인천 공항에는 지나다니는 자동차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공항 내에 사람들도 몇 되지 않았다.
시간이 되어 인도로 들어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큰 비행기 안에는 우리 가족을 포함해서 40명이 안 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모두 피치 못할 사정을 가지고 인도로 들어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공부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또 다른 이유로 인도 행을 결정했을 것이다.
8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을 비행한 후 우리는 인도 첸나이 공항에 도착했다.
코로나로 인해 인도행 정기 항공이 뜨지 않았고 특별기만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집으로 가기 위해 첸나이 공항에서 국내선을 두 번이나 더 갈아 타야 했다. 그래서 인도 첸나이 공항에 도착한 것은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인도로 들어올 때는 많은 짐을 가지고 왔다. 인도 학생들의 온라인 수업을 돕기 위한 중고 핸드폰들과 학교 선생님들의 줌 수업을 돕기 위한 중고 컴퓨터들 그리고 인도 학생들에게 별을 관측할 수 있는 천체 망원경 등 우리 개인 짐들 보다는 공적인 짐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다른 한국인들이 다 나가고 나서야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첸나이 국제공항에서 나온 우리 가족은 국내선을 타기 위해 국내선 공항 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그때 노란색 한인회 조끼를 입은 한 분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XX항공 타고 오셨죠? 오실 때 작성하신 입국 서류는 저에게 주시면 됩니다."
첸나이 한인회라고 쓰여 있는 한국 글씨가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한인회에서 나오셨나 봐요? 더운 날씨에 고생 많으시네요."
한인회에서 나오신 정 선생님은 코로나도 무섭지 않은 듯 적극적으로 인도에 도착한 한국 인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안 그래도 첸나이 공항은 처음이었던 지라 국내선 가는 방향을 물어봤다.
"저희가 사실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하거든요. 24시간 후에 비행기가 있는데 보시다시피 짐이 너무 많아서요. 호텔에 가기도 그렇고 또 코로나 때문에 웬만하면 공항 안에 있으려고요. 국내선 공항이 어느 쪽이지요?"
"국내선 공항은 왼쪽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있어요. 그런데 24시간 후 비행기면 공항에 들여보내 주지 않을 텐데요."
맞는 말이었다. 인도는 한국과 달이 공항 내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생길 까 봐 또 테러의 위협 때문에 공항에 들어가는 것도 꼭 티켓을 확인한 후에 들여보내 주었다. 그것도 6시간이나 길게는 12시간 전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24시간 후에 비행기가 있으니 당연히 공항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을 것이었다.
남편은 머쓱해하며 말했다.
"네. 그래도 시도해 봐야죠. 이 많은 짐을 가지고 택시를 타지도 못할 것 같은데요. 뭐 최대한 노력해 봐야죠."
그렇게 짧은 대화를 나누고 우리 가족은 공항 카트에 짐을 잔뜩 싣고 국내선 공항 쪽으로 갔다.
공항 입구에는 총을 멘 군인이 티켓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티켓을 확인한 군인은 고개를 저었다.
"24시간 후에 비행기를 예약하셨는데 그 전에는 공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남편은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한국에서 지금 도착했고 짐이 너무 많아서 또 코로나 때문에 다른 곳에 갈 수 없으니 공항에서 기다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이다. 우리의 사정을 들은 군인은 책임자에게 이야기해보겠다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지만 결론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아이들도 나도 지쳐서 옆에 앉아 있을 때였다. 그냥 공항 입구 의자에서 하룻밤 지새 볼까 하는 생각까지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한인회 정 선생님이 다시 나타났다.
"아니 어떻게. 허락 못 받으신 거예요?"
"네.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된다고 하네요. 어딜 가기도 애매하고 참." 남편의 한숨이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제가 한 번 XX항공사 매니저에게 연락해 볼게요. 제가 담당자 번호를 알고 있거든요."
정 선생님은 분주하게 핸드폰으로 우리가 타고 온 항공 매니저와 통화를 했다.
"잠시만 기다려달래요. 방법을 찾아봐 준다고요." 모두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때 공항 안에서 누군가 서류를 군인에게 전했고 그 군인은 우리가 공항 안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다.
한인회 정 선생님의 전화통화가 먹힌 것이었다. 항공 매니저가 공항 측에 부탁하여 자기 항공을 이용하는 승객이 비행기를 탈 때까지 공항에서 기다릴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준 것이었다.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선생님 덕분이예요."
"아이고. 아닙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정 선생님은 당연히 할 일을 했다고 웃으며 우리를 보내주었다.
공항 의자에 짐을 내려놓고 짐을 간이침대 삼아 아이들을 재운 후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근데 아까 그 한인회에서 오신 선생님 어떻게 다시 오신 거예요? 분명히 그때 헤어졌었잖아요?"
"응. 차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는 아무래도 우리가 고생을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국내선 출국 장으로 오신 거래. 참 대단하시지. 고마우신 분이야."
"와. 그랬구나. 그분이 아니었다면 정말 하룻밤을 공항 밖에서 지새웠어야 할지도 모르잖아요. 정말 우린 오늘 천사를 만났네. 한인회 천사!"
*타지에서 만나는 한국사람은 정말 특별한 것 같아요. 이 어려운 시기에 공항에 나와서 인도로 들어오는 한국 사람들을 도와주시는 첸나이 한인회 정 선생님처럼요. 같이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 놓을 걸 너무 아쉬움이 크네요. 힘든 상황에 힘든 시기에 서로 도움이 되어 주는 한국 분들이 계셔서 인도에서의 생활이 더 힘이 납니다. 세계 여러 지역에 있는 한인회 특히 인도에 있는 한인회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