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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Mar 16. 2022

봄 같은 아이, 칸찬

코로나가 오기 전 그러니까 2019년 초에 집시들을 만났다. 

사실 집시들을 본 것은 전부터인데 무리 지어 다니며 구걸하는 어린들과 아이들 모습이 측은하기보다는 두렵기까지 했다. 혹여나 내게 다가와 가진 모든 것을 달라고 할까 봐. 

그런데 인도 직원들의 추천으로 그들이 사는 곳, 그러니까 잠시 머무는 곳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집시들과 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집시들은 매 년 겨울이 되면 우리 사는 지역에 찾아오고 우기가 찾아오면 즉 여름이 시작될 때쯤 이곳을 떠난다. 매 년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어도 그저 떠나는 그들의 삶의 방식은 아직도 낯설다. 

칸찬을 만난 것도 그때쯤이었다. 2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칸찬의 얼굴에는 피부병이 있었고 그래서 칸찬의 부모님이 우리를 불렀다. 천막 아래 해맑게 웃고 있던 칸찬은 내가 피부약을 얼굴에 발라 주는데도 울지도 않았다. 수줍은 웃음을 내게 보이던 칸찬은 그렇게 매년 집시 무리들과 함께 우리가 사는 마을에 왔다. 

올해 초 칸찬을 만났을 때는 이미 칸찬은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내가 집시 부족을 찾을 때마다 웃으면서 달려 나오던 칸찬은 집시 부족에 있는 많은 어린아이들 중에 내가 특히나 예뻐하는 아이였다. 

그날도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또 집시 아이들의 옷을 사주기 위해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를 적고 있는데 여러 아이들이 내 주위에서 뛰놀다 보니 옷이 많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들판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내 옷을 만져서인지 내가 모르는 사이 바지 부분이 먼지가 묻어 있었던 것이다. 

한참 아이들 사이에 서서 이름을 적고 있는데 작은 손길이 느껴졌다. 누군가 내 바지를 털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칸찬이었다. 

큰 눈망울을 가진 칸찬은 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내 바지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주느라 바빴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너, 칸찬. 나는 모든 것을 내려 두고 칸찬을 꼬옥 안아 주었다. 

누가 이 어린아이에게 남을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일까. 

봄처럼 내게 환한 미소를 선물하는 칸찬. 

수줍은 얼굴로 내게 다가와 살짝 내 손을 잡는 칸찬은 나를 배려해 주는 작은 천사이다.


여름이 다가오고 어느 날 갑자기 집시들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낡은 천막들로 가득 찼던 들판에는 풀을 뜯는 소들만 보였다. 이제 이 들판은 우기가 되면 물이 찰 것이고 아무도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다시 강이 마르고 집시들이 오겠지.

그러면 나는 또 그 무리들 속에서 봄을 가지고 있는 칸찬을 만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따뜻한 봄 천사 칸찬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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