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손님을 초대하는 날이었다.
인도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해 주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기에 점심시간이 되기 일찍 전부터 없는 재료로 여러 가지 메뉴를 생각했다. 그래도 제일 쉬우면서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것이 비빔밥이었다.
밥과 볶은 야채 그리고 고추장만 있으면 되는 비빔밥.
인도에 와서 반찬 할 게 없을 때면 쉽게 야채를 볶아서 고추장과 함께 비빔밥을 차려 줬기 때문에 아이들은 오히려 지겨워하는 메뉴였다. 그래도 인도 친구들이 우리 집을 방문하는 날이기에 나는 비빔밥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당근을 썰고 양파와 양배추 등 다른 야채를 볶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빠진 재료 하나가 생각났다. 바로 계란! 비빔밥에 계란 프라이가 빠지면 되겠나.
그렇게 나는 스쿠터를 타고 가까이에 있는 구멍가게로 갔다. 35도가 훌쩍 넘어가는 뜨거운 대 낮에 분홍색 야구 모자를 쓰고 집 근처 마을에 있는 가게로 가는 길이었다.
혹여나 분홍색 야구모자가 바람에 날아갈까 낮은 속도로 달리는 길. 뜨거운 태양과 후덥지근한 열기가 바람에 섞여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가서 나쁘지 않은 드라이브였다.
작은 다리를 건너 아스팔트 길을 조금 더 지나가니 계란을 파는 가게가 보였다. 그리고 가게 앞으로 큰 나무통들을 싣고 가는 리어카의 뒷모습도 보였다.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길은 약간 내리막길이었다. 그래서 리어카 주인도 쉽게 내리막 길을 가고 있겠거니 했는데 리어카는 반대 방향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기이하여 나는 오토바이를 주차하고 다시 한번 그 리어카를 쳐다보았다.
리어카 뒤에는 무거운 통나무가 다섯 개나 있었는데 그 무게가 너무 커서 오르막길을 당기는 것이 힘에 부쳤던 모양이었다. 아저씨는 있는 힘을 다해 아주 천천히 자신의 발을 바닥에 고정시키고 온 몸으로 그 무거운 나무 무게를 저항하며 오르막을 오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앞에서 무거운 짐을 끌어당기는 것보다 내 몸을 의지해 뒤에서 미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나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계란을 사면서 식용유와 밀가루까지 사고 돌아오는 길, 아저씨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리어카를 밀고 있었고 평평한 다리까지 도착하려면 아직도 긴 시간을 가야 할 듯했다.
아스팔트 거리를 천천히 지나가는 달팽이처럼 그 길을 리어카와 함께 지나가는 아저씨.
뜨거운 태양 아래 아저씨는 온몸에 땀을 흘리며 얼마나 먼 길을 저 무거운 통나무들과 걸어왔을까.
저 무거운 짐을 옮기면서 누구를 기억했을까. 어떤 마음으로 저 더위와 무게를 견디고 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토바이 속도 덕분에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이 미안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손님을 생각하며 오토바이의 속도를 내어 아저씨를 지나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저씨와 리어카의 모습은 한동안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모두에게 매일 지고 가야 하는 삶의 무게가 있다면 그 아저씨에게는 저 무거운 통나무들이 오늘 지고 가야 하는 삶의 무게이겠지. 힘들게 올라가는 오르막길이 있으면 그저 리어카 앞자리에 앉아서 방향만 잡아주면 되는 내리막 길도 있을 테고 그때는 뜨거운 태양만이 아닌 시원한 바람도 느낄 수 있겠지.
자신의 삶의 무게를 아무 불평 없이 이겨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나는 자주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내 삶이 어렵다 힘들다 느낄 때면 아마 힘들게 그렇지만 꾸준히 리어카를 밀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다시 한번 주먹을 불끈 쥐고 내게 다가오는 삶의 무게를 이겨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