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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Oct 23. 2022

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밤

어느새 이 밤은 내 마음속에 작은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엄마. 어제 저희가 찍은 별 사진 봤어요? 오늘은 더 많은 별똥별이 떨어진다고 해서 오늘도 별을 보기로 했어요.”

“그래. 너무 예쁘더라. 나도 가서 봐야겠어.”

어제 큰아이 성민이와 둘째 현민이는 새벽 한 시까지 인도 형, 누나들과 함께 별을 관찰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시골이었기 때문에 주위 불을 다 끄고 나면 꽤 많은 별들이 보인다. 그런데 어제는 아이들과 인도 친구들이 작정을 하고 별을 관찰한 것이다. 돗자리를 몇 개 깔고 하늘을 향해 누웠다. 그리고 새벽까지 은하수를 찍고 별이 움직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사진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도 오늘은 같이 참여하기로 했다.

큰아이가 찍은 밤하늘 사진

밤 9시가 넘어서 집 앞 운동장에 모두 모였다. 성민이는 망원경과 카메라를 준비했고 다른 인도 친구들과 현민이는 이미 돗자리 위에 누워 별을 보고 있었다. 센스 쟁이 현민이가 집에서 이불을 몇 개 가져와 옹기종기 누워서 별을 관찰한다.

나도 제니퍼 옆에 누워 이불을 나눠 덮었다. 날씨도 쌀쌀했고 모기도 있었기 때문에 이불은 밤하늘 구경에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처음 밤하늘은 캄캄했으나 많은 별이 보이지는 않았다. 주변의 불빛들이 밤하늘 별들의 빛을 가리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인도 친구들과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하나둘씩 아니 수 백 개의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별과 저 별 사이에는 아무 별도 없는 줄 알았는데 그 사이에도 수많은 별들이 존재했다. 점점 늘어나는 별을 보며 나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별을 감상했다. 그때 밤하늘 동쪽 부분에서 작지만 긴 별똥별이 떨어졌다. 우리 모두는 환호성을 질렀다. “꺅~~~”

아주 짧은 순간이었기에 소원을 빌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형광펜으로 선을 그리는 것처럼 떨어지는 별똥별의 우아한 모습에 매료되어.

이 순간을 담고 싶어 핸드폰으로 밤하늘을 찍어댔다. 그때 또 다른 함성이 들렸다. “와~ 이번엔 좀 더 큰 별똥별이었어요.” 인도 친구들과 아이들은 자신들이 본 별똥별이 벌써 몇 개나 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디 어디? 아~ 나 핸드폰 찍느라 못 봤잖아. 아... 아쉬 워라. 이제는 다른 곳은 절대 보지 않고 하늘만 보고 있을 거야.” 나는 다짐하듯 말했다. 그때 하늘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형광색 보다도 더 명료한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꼭 나에게 자신의 빛을 봐 달라고 뽐내는 것처럼. 나는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하지만 금세 내 눈 위를 지나가는 이 친절한 별똥별은 지구에 사는 작은 반딧불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별똥별을 따라 하기에는 아직은 미숙한 반딧불이의 비행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웃음을 터트렸다.

“반딧불이 보신 거예요? 저희도 봤어요. 진짜 별똥별 같지요?”

인도 친구들은 나의 웃음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근데 너무 귀엽다. 꼭 나도 아름답지 않나요? 하면서 자신의 불빛을 뽐내는 것 같아.” 지구의 작은 별똥별은 우리가 저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자신의 작은 빛을 뽐내며 지나가곤 했다. 우리는 지구의 이 작은 별똥별이 사랑스러워 미소 지었고 더 멀리 있는 별을 보고 감탄했으며 별똥별을 기다렸다. 그리고 별똥별이 떨어질 때면 함께 소리 지르며 감동했다.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그때 레이키가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멋진 밤하늘과 어울리는 노래였다. 레이키는 원래 노래를 잘하는 인도 친구인데 자신의 노래 유튜브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노래에 진심이었다. 레이키의 잔잔한 노랫소리 위로 현민이와 뿜뿜의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얹혔다. 그리고 제니퍼와 나 그리고 수지의 나지막한 대화 소리가 더해졌다. 모닥불은 없었으나 괜스레 마음 설레는 순간이었다. 함께 누워 이야기를 나눈 지 3시간이 지나갈 때쯤 검푸른 밤하늘에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흰 빛깔 양떼구름이 떠내려 오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반짝이는 별들을 가리고 있었다. 이제는 양떼구름 사이에서만 볼 수 있게 된 별들.

최근에 연인과 이별을 해서 힘들어하던 제니퍼는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이 있었는데 참 오래 동안 하늘을 잊고 살았네요.”

“그러니까.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걱정들과 생각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 마냥 이 순간을 느낄 수 있는 거지.”

“네. 밤하늘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너무 편안해요.” 제니퍼는 여전히 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다시 레이키가 우쿨렐레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화음을 넣어가며 이른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다. 북동 인도의 이른 가을이었다. 하늘의 반이 구름으로 가려져 있어서 많은 별들을 볼 수는 없었지만 밤하늘은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웠다.

그 순간 내 곁에 밤하늘의 별들보다 더 반짝이는 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밤하늘에 매달려 있지는 않지만 반딧불처럼 빛을 내며 이곳저곳을 날아다니지는 못하지만 내 곁에서 웃음을 주고 마음을 나눠주는 아름다운 별들. 나는 깊은 밤 함께 누워 별을 보며 시시콜콜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 사람들이 별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별을 바라보는 밤. 별과 이야기를 나누는 밤. 별과 함께 노래 부르는 밤.

어느새 이 밤은 내 마음속에 작은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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