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은 추억이다
라면을 참 좋아한다. 일단 요리 없이 간단히 먹을 수 있고 또 맛이 끝내 준다. 특히 외국에서 먹는 한국 라면은 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갑자기 솟구치는 애국심의 맛이라고나 할까.
어렸을 적의 라면의 기억은 하나다. 밤에 먹는 야식.
가끔 남동생은 밤늦게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러면 꼭 물을 끓이면서 내게 물었다. "누나. 라면 먹을 거야 안 먹을 거야."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음... 안 먹어. 누나 다이어트해야 해."
그럼 동생은 꼭 한마디 더 한다. "누나. 나중에 달라고 하지 마."
나는 라면을 끓일 때 물 양이 안 맞을까 봐 라면을 먼저 넣는다. 수프를 먼저 넣으면 나중에 물을 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동생은 달랐다. 물 양도 어쩜 그렇게 잘 맞추는지 물이 끓으면 꼭 라면수프를 먼저 넣어야 한단다. 역시 남자들이 라면을 잘 끓인다는 말이 진짜인가. 그렇게 라면수프가 잘 섞여지면 라면을 넣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을 끈다.
늦은 밤 텔레비전 앞에 작은 상을 펴놓고 앉아 있는 동생에게서 기가 막힌 냄새가 올라온다. 유명한 요리사 저리 가라는 남동생의 라면 냄새.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동생에게 달려든다.
"야. 한 입만." 젓가락을 들고 달려드는 나를 보고 남동생은 말한다.
"아~ 누나. 내가 아까 말했잖아. 먹을 거냐고. 그때는 안 먹는다더니."
울상이 된 남동생을 보고 마음 약해질 내가 아니다. 나는 이미 세상 어디서도 맡아보지 못한 라면의 냄새에 매료되어 있었기에.
"야. 한 입만 줘봐. 한 입만 먹을게." 그렇게 한 입 한 입이 늘어 금세 동생의 라면은 바닥이 보인다.
당한 자와 성취한 자. 그러나 둘 다 밤늦은 라면 야식에 빙그레 웃으며 텔레비전을 본다.
"누나. 다음에는 절대 안 줘."
"알았어. 알았어."
난 결심한다. 다음에는 절대 밤에 라면 같은 것은 먹지 않겠다고. 동생은 결심한다. 다음에는 아무리 누나가 사정해도 절대 라면을 뺏기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안다. 절대라는 단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지키기 힘든 단어라는 것을.
밤이 늦어간다. 거실을 가득 채운 라면 냄새와 함께 동생과 나의 남매 우애도 한껏 올라간다. 맛있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