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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Oct 30. 2022

엄마

엄마와 데이트를 해야겠다

어릴 적 나는 엄마와 시장 가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는 나보다 한참 키가 컸는데 나는 엄마와 팔짱을 끼고 안동에 있는 구 시장과 신 시장을 걸었다. 

엄마는 시장에서 필요한 야채를 사고 두부를 샀다. 두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구수한 손두부 냄새가 나는 두부 가게를 지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려졌다. 엄마 손에는 콩나물과 야채들이 가득 들어 있는 검정 비닐봉지가 있었다. 

그리고 아주 가벼운 나물 들만 내 손에 들려져 있었다. 나는 엄마의 팔을 잡고 걸었는데 특히 엄마 팔의 보들 보들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길을 걸으면서도 엄마의 팔 안쪽의 보드라운 부분을 만지곤 했다. 

엄마와 걷는 골목길. 

나는 엄마의 냄새가 좋았고 엄마의 보드라운 살결과 목소리가 좋았다. 엄마는 내게 전부였다. 


이제 엄마는 나이가 들었고 그 힘들다는 갱년기도 거의 마쳐 간다. 엄마의 갱년기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처음 맞는 일이었다. 나는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지만 갱년기는 그냥 그렇게 지나간다고만 생각했고 말로만 엄마를 걱정했다. 

그렇게 엄마는 갱년기로 두 번 응급실에 실려 갔다. 매 번 몸이 좋지 않다고 했고 마음도 힘들어하셨다. 하지만 남동생도 그리고 하나뿐인 딸인 나 조차도 그저 엄마가 겪어야 하는 이겨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묵직하게 아프고 가슴이 두근 거리는 여러 증상이 있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인터넷 검색 한 번 해 보지 않았다. 

견디다 못해 엄마는 올해 초 병원에서 주는 호르몬제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고 했다. 

엄마가 호르몬제를 먹으니 아프다는 소리가 훨씬 줄었다는 아빠의 목소리를 전화로 듣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호르몬제만 먹으면 증상이 감소될 수 있는 것을.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해결책이었는데. 

엄마는 내게 말했다. "사람은 아프면서 나이가 들어가는 거더라. 예전에 외할머니가 자꾸 여기저기 아프다고 이야기할 때는 몰랐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가. 나이가 그냥 드는 게 아니더라. 아프면서 나이가 드는 거야."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듯하다가도 또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의 나이가 되고 갱년기가 되면 그때야 엄마를 제대로 이해하게 될까. 

갱년기를 이겨내고 있는 엄마. 생각해 보니 나는 엄마와 따로 시간을 보낸 적이 거의 없었다. 몇 년 전 먼 친척 결혼식에 참여하러 청량리까지 올라온 엄마와 잠깐 청량리 구경을 한 것이 전부였다. 우리는 가족들과 함께 만났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가족 안에서 존재했고 가족은 엄마에게 전부였다. 그래서 나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음 휴가 때는 엄마와 꼭 단둘이 데이트를 해야겠다. 

엄마와 같이 시장을 걸어 봐야지. 안동의 구시장, 신시장을 걸으며 양말도 사고 두부도 사야지. 맛있는 떡볶이도 먹어 보고 아. 그래. 괜찮으면 스티커 사진도 찍어 봐야겠다. 

엄마랑 데이트를 해야겠다. 꼭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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