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통역을 한 아빠
-글을 시작하기 전 먼저 이태원 사고로 꽃 같은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을 생각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따스한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토요일 오후. 나는 아빠 엄마와 영상 통화를 했다.
인도라는 먼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부모님의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이 나의 다짐이었다. 엄마 아빠는 한 주 동안 일터에서 있었던 이야기들, 가족들의 소식 등을 전해주었고 나는 우리 식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아빠는 몇 년 전에 인도를 방문했기 때문에 그런지 내 하는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진다고 했다. 일흔이 넘은 아빠는 오랫동안 하던 건축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집에서 삼십 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작은 땅을 샀고 복숭아와 자두 그리고 몇 가지 야채들을 심었다. 복숭아와 자두가 아빠에게 수익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빠는 자기 땅에서 나오는 과일과 야채들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기쁨으로 사는 듯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밭에 가지 않는 날에는 인력 사무소를 나가 신다고 했다. 아무래도 하루 나가면 과수원에서 얻는 수익보다는 많은 일당을 받을 수 있으니 용돈이라도 벌고 싶으셨으리라.
그때 엄마가 말했다.
"너네 아빠가 인력 사무소에 요즘 나가는데. 거기서 한국 말을 이해 못 하는 중국 사람을 도와줬다 잖아. 여보. 당신이 한 번 말해 봐요." 엄마의 목소리에는 남편 향한 자심이 가득 차 있었다.
아빠는 쑥스러울 때만 보이는 웃음을 보였다.
"아이. 별거 아니야. 아빠가 아침에 인력 사무소를 나가 잖아. 거기는 나가면 그날 바로 일당을 주거든. 그래서 놀면 뭐해. 아침이면 나가는 거지. 근데 중국 사람들이 꽤 온단 말이야. 그날은 중국인이 왔는데 소장이 아무리 이름이 뭐냐고 물어도 대답을 못하는 거야. 그 소장이 한문도 꽤 잘하고 뭐 박사학위도 했다고 했나 그런 사람이거든. 아무리 물어도 답을 못하는 거지. 그래서 내가 가서 한문으로 "너 니, 이름 명"을 써 줬지. 그랬더니 자기 이름을 말하는 거야."
"와~~ 우리 아빠 멋진 대요. 대박~"
그러자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너네 아빠가 그런 사람이야. 시간만 나면 한문을 공부하고."
"아니야. 요즘은 피곤해서 잘 보지도 못해. 그냥 노력하는 거지. 나는 요즘 영어를 배우고 싶은데 아니 여기 동네 서점이 다 문을 닫은 거야. 그래서 나중에 서울 올라가면 하나 사보려고."
아빠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분이셨다. 하지만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겨울 동안 건축 일이 없을 때는 시청에서 컴퓨터를 배우기도 했고 오랜 시간 동안 한문 공부를 해서 성경이나 논어 같은 책들도 한문으로 읽을 수 있는 정도였다. 건축 공사장에서 일할 때는 집에 돌아오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건축 설계 법을 공부할 정도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영어를 공부하신다니.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나이 많으신 분들도 영어 공부 열심히 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아빠도 할 수 있어요. 파이팅!"
나는 아빠가 도전하는 모습이 너무 좋다. 인도를 방문하셨을 때도 인도 친구들에게 손발을 사용해 가며 말을 거는 아빠의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도 도전하는 것이 좋다. 어려운 피아노 곡을 연습하고 글쓰기에 도전하고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것. 뭔가 도전할 때 나는 희열을 느끼고 살아가는 에너지를 느낀다. 역시 그 아빠의 그 딸인 것인가. 나이가 들어서도 도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끊임없이 도전하여 나를 발전시키고 일깨우는 사람이 되고프다.
전화통화가 끝날 때쯤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우리 죽는 날까지 배우는 걸 멈추지 말아요. 계속 도전하는 사람이 되자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