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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Nov 03. 2022

평생 공을 싫어할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였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이과 문과가 한 반 씩 밖에 없었는데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이과와 문과는 남북한을 대표하듯이 앙숙이 되곤 했다. 그때 발야구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반대편 투수가 날린 공이 내 앞으로 날라 오고 있었다. 모두가 내가 멋지게 그 공을 날려버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눈을 찌끔 감고 말았다. 공을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공을 무서워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저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날아오는 것은 무서웠던 것 같다. 사실 공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체육 종목을 잘하지 못했다. 그나마 했던 것이 달리기였다. 하지만 달리기 역시 친구들의 키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나는 달리기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느 순간 나는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는 선수가 아닌 응원을 하는 아이로 바뀌어 있었다.


인도에 온 지 12년 만에 친한 인도 친구들과 토요일 저녁 운동 모임을 하게 되었다. 배드민턴부터 축구까지. 처음에는 남자들만 모여서 운동을 하다가 언제부턴 가 여자들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몇 주 전에는 여자들만의 축구 경기가 있었다. 언제 축구를 해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고등학교 때 체육시간에나 조금 해 봤을까. 나는 공을 무서워했기에 경기에 제대로 참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경기가 시작되자 어디서 난 힘인지 나는 공을 쫓아 달렸다. 물론 우리들의 축구 경기는 체계적으로 패스하고 골을 넣는 경기는 아니었다. 그저 공이 가는 대로 우르르르 몰려다니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축구였다. 하지만 공을 따라다니는 동안 나도 함께 경기를 하는 인도 친구들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누군가 찬 공에 내 다리를 맞기도 했지만 괜찮았다. 오히려 뿌듯했다. 그것은 꼭 상대방의 공격에 방어하는 나의 하나의 기술 같았기에. 그래서부상을 당할 뻔했으나 씩씩하게 일어나는 국가대표 선수처럼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파이팅을 외치며 경기에 임했다.

축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더 이상 공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주도적으로 공을 따라가고 상대방에게 공을 패스해 주기도 하는 그런 적극적인 나만 있었다. 어느새 나는 축구 경기를 하면서 발야구나 배구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두려움으로 인해 닫혀있던 나의 사고가 조금씩 열리는 순간이었다.

물론 아직까지 축구 외에 다른 공 운동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공으로 하는 경기들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평생 공을 무서워라는 법 없고 평생 공부 못하라는 법은 없다. 언젠가는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것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고 언젠가는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것을 싫어하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그토록 무서워하던 공과 40년 만에 조금 친해진 것처럼 말이다.

평생 그럴 거라는 편견은 버려버리자. 조금 여유를 가지고 다시 도전해 보자. 언젠가는 생각지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희망을 버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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