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그 고민들을 날리던 방법

빗속을 헤치며 친구와 달리던 운동장

by 모두미

그날은 유난히 어두웠다. 밤도 아닌데 짙은 구름으로 햇님이 가려지고 전체적인 학교의 분위기는 스산했다.

고등학교 3학년.

난 이미 어둡고 무거운 학업이라는 짐을 가지고 고민하고 번뇌하고 있었고

그날은 더욱 마음이 무거운 날이었다.

희미하게 보이던 나의 미래, 다가오는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냥 있다가는 폭팔 할 것만 같았다.

저녁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자율학습을 위해 교실로 향했다.

문제집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처럼 몸을 숙여서 공부를 하는 친구들, 이어폰을 끼고 유행가를 들으며 몸을 흔들어대는 친구들, 그리고 나 처럼 창 밖을 응시하는 친구들. 어두운 밤 모두가 서로 다른 모양으로 각자 책상에 앉아 고3이라는 마라톤에 참여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짙은 구름으로 하늘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더니 어두운 밤이 되니 장대비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교실 속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도 빗소리에 스며든다.


펼쳐 놓았던 연습장을 덮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밖은 여전히 장대같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간간히 기숙사에 들렀다 오는 친구들의 우산들만 보였다. 난 아무 생각하지 않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답답한 이 마음을 해소할 방법이 어디엔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깥에 뛰어 나가고 싶었다.

그때 친구 한명이 내 옆으로 왔다. 같은 반이긴 했지만 그리 가까운 친구는 아니었다.

"야. 정말 비 많이 온다."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런 날은 정말 비 맞으면서 뛰고 싶지 않나?"

난 깜짝 놀랐다. 어쩜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

"진짜 그렇지? 야 나도 아무생각 안하고 그냥 뛰었으면 좋겠다."

그랬다. 난 정말 비오는 운동장을 정신없이 뛰고 싶었다. 아무 생각하지 못하도록, 고민까지 씼어 내고 싶었다.

"진짜? 우리 정말 뛸까?" 그 친구의 눈을 보니 진심 처럼 보였다.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오는 날 그 친구와 나는 운동장을 달렸다. 내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그 친구는 묻지 않았다.

그 친구에게는 어떤 마음의 짐이 있어서 이 비오는 자율학습 시간에 밖으로 나오게 되었는지 나 역시 묻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뛰었다.

장대같은 비가 이기는지 우리가 이기는지 젊음의 질주를 하고 싶달리고 또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도 나도 비에 맞아 온 몸이 흠뻑 젖었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누가 우릴 보고 미쳤다고 해도 괜찮았다. 우리는 그저 답답한 그 상황에서 뛰쳐 나왔을 뿐이고 장대비를 맞으며 우리의 슬픔을 씼어 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운동장을 7바퀴 뛰고 나서야 자율학습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친구도 나도 물기 가득한 운동장 바닥에 철퍼덕 앉았다.

말이 필요 없었다. 운동장을 성공적으로 뛰었다는 기쁨과 우리의 스트레스를 이렇게라도 표출했다는 행복감에

한참을 웃으며 앉아 있었다.

이제는 밀려오는 공부의 압박감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하늘이 내리는 시험에 맞서서 끝까지 달렸으니 이만하면 충분하다 했다.

하늘도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더 거세게 비를 뿌린다.

그리고 빗소리도 더 커진다.

우리의 고민을 우리의 열정을 응원하는 박수 소리 처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람을 살리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