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음식에도 행복을 느꼈던 그때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살던 기숙사는 네모 모양의 이층 건물이었다.
기숙사 안쪽으로는 자갈밭과 함께 작은 나무들이 있었고 지나가는 우리들에게 잠시 쉬어 가라고 작은 나무 의자도 놓여 있었다. 중학교 일 학년 처음 기숙사에 들어가던 날. 어색한 친구들과 방장언니(방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언니를 가리켜 부르는 말) 그리고 방원들. 고동색깔의 오래 된 나무책상과 의자, 그리고 반대 편 벽 쪽에 붙어 있던 사물함 네 개. 모든 것이 낯설었다. 새로 산 곰돌이가 잔뜩 그려진 이불 배게 세트와 세면도구 세트 그리고 작은 서랍장까지 내 사물함에 넣고 정리가 끝나서야 엄마는 나를 두고 집으로 가셨다.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 아빠와 떨어져 생활하게 된 나는 그 기숙사에서 빨래를 빠는 법도 방청소를 하는 법도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도 배웠다.
밤이면 일층 복도에 서서 점호를 받았다. 각 방 별로 모든 학생들이 다 들어왔는지 사감 선생님이 체크 하는 시간이었다. 키 큰 언니들 사이에서 빼꼼이 얼굴을 내밀며 사감 선생님을 쳐다 보는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 같은 중학교 1학년 들은 모두 긴장한 얼굴들이 역력했다. 아마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아!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나?’
집처럼 포근하거나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방장언니 옆에 부 방장 언니 그리고 같은 나이 친구 한명과 이불을 깔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잘 오지 않던 기숙사에서의 첫 날밤. 그렇게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기숙사 생활은 꽤나 재미있었다. 새벽같이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함께 기상을 해서 최대한 빨리 샤워실의 자리를 맡아야했다. 학생들이 몰리는 아침 시간이면 영락없이 샤워실 세면대 뒤쪽으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세면도구들이 줄줄이 놓여있었다. 한 마디로 조금 더 일찍 일어나는 학생이 더 빨리 씻을 수 있었다.
또 기숙사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긴 줄을 서야 했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3까지 있는 학교였으니 식사 시간 식당은 말 그대로 학생들로 가득 찼다. 삼삼오오 줄을 서서 식사를 기다리던 시간은 우리들의 수다 시간이었다.
선생님들 이야기, 좋아하는 남학생 이야기, 무서운 선배 이야기 친구들과 이야기 등 쉴 새 없이 이야기 하다 보면 어느새 배식을 받는 차례였다. 기숙사에서 먹는 밥은 뭐가 그리도 맛있던 지 먹고 또 먹어도 뒤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집에서는 먹으라고 해도 먹기 싫던 음식들도 기숙사 식당에서는 모두 특별 식처럼 보였다. 어쩌면 엄마 아빠가 없는 빈 공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학교가 끝나고 한 달에 한 번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있었다. 바로 방 파티 날!
외출 날 방장 언니를 중심으로 몇 천 원씩 모아서 우리는 방 파티를 했다. 그동안 서로 서운했던 일들, 또 속상했던 일들, 어려웠던 학교생활의 스트레스를 함께 먹으며 푸는 시간이었다.
떡볶이에 김말이와 튀김만두 까지 곁들인 봉지 하나와 학교 가까이 제과점에서 팔던 모카 생크림 빵, 그리고 생 라면 하나면 충분했던 우리의 방 파티.
다른 방원들과 사감 선생님 모르게 문을 잠가 놓고 방원들과 함께 음식을 먹을 때면 그렇게도 보고 싶던 엄마 아빠도, 힘들었던 친구 관계들도, 외로웠던 학교생활들도 모두 치료되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코스로 생 라면 부스러기들을 스프에 찍어 먹을 때, 매운 그 맛에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도 우린 함께 하는 짜릿한 행복을 느꼈다. 요즘 말로 친다면 힐링 되던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작은 방 파티가 학교와 기숙사 생활의 힘든 일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처럼 먹고 또 먹었다.
우린 따뜻한 떡볶이, 달콤한 모카 생크림 빵, 그리고 매콤한 생 라면을 먹으면서 그 안의 소박한 행복을 먹고 있었다.
어린 동생들을 보살펴 주는 방언니들의 사랑을 먹고, 친 자매처럼 함께 지내던 친구들의 사랑을 먹고 있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바빠”를 외치는 요즘. 왠지 그 소박한 음식들이 그립다. 그 소박한 행복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