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며 배우는 삶
한동안 비어있던 이웃집에 누군가 이사를 왔다. 며칠 전 이삿짐을 옮기는 것을 봤었는데 제대로 인사는 하지 못했었다. 다행히 그날은 오피스를 향해 걸어가는데 그 집 문 앞에 누군가 앉아 있지 않은가? 그래. 지금이 기회다. 인사해야지. “나마쓰떼! (안녕하세요)” (또 오지랖 넓은, 친한 척 하기 전문가인 내가 나섰다.) 삐쩍 마른 몸에 부스스한 머리 스타일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인상까지. 그녀는 뭔가 단단히 화가 나있었다. 새로 이사 온 집이 마음에 안 들었던지, 유난히 숲이 많은 이 지역이 마음에 안 들었던지. 아니면 주책없이 큰소리로 인사해 오는 낯선 내가 마음에 안 들었던지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째려본다.
뭐 인사를 먼저 하다 보면 가끔 겪는 당황스러운 상황이긴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매서운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조금 화가 나기도 하고 말이다. 인사한 것이 무슨 죄라고!)
그녀의 이름은 쏘나! 20대 후반인 그녀는 언청이와 소아마비를 함께 가지고 있는 소녀였다. 20대 후반에게 소녀라고 부른다고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녀는 나이와는 다르게 어린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에 오는 날이면 공주 드레스에 양 갈래로 나눠 땋아 놓은 삐삐 머리 까지.
누가 봐도 그녀는 20대 후반이 아닌 초등학생이었다.
말소리 또한 알아듣기 어려운 어눌한 발음에 소아마비로 인해 걸음 또한 유난히 남달랐다. 또 어디를 쳐다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녀의 눈빛은 사람들을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던 날, 그런 자세한 내막을 몰랐던 난 그녀가 나에게 단단히 화가 났다고 오해했다.
며칠이 지나 그녀의 부모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 내가 가르치는 무료 피아노 교실에서 쏘나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 안에만 있으니 아이가 너무 지루해한다면서.
난감했다. 그녀의 발음을 알아듣기도 힘들었고 걷는 것도 정상적이지 않는데 피아노 배운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녀의 이해 수준이 얼마나 될까? 걱정 섞인 말투로 쏘나 어머니께 이야기드렸다.
“쏘나가 손가락을 잘 사용할 수 있나요? 그리고 제가 가르치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 두 가지가 된다면 제가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네요.”
물론 쏘나 어머니는 확신에 차서 이야기했다. “네. 당연히 조금은 느리겠지만 다 가능해요.”
15명 정도의 아이들과 어른을 무료로 가르쳐 주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처럼 난처한 상황이 없었다. 그녀가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내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녀가 얼마나 민망해할까? 여러 가지 고민들이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렇게 첫 레슨 시간이 되고 그녀는 아주 씩씩한 걸음으로 내 피아노 교실에 찾아왔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배우고자 하는 열정 하나는 일등이었다. 그렇게 악보를 가르치고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아이들이 배우는 것보다 두 세배는 오래 걸린다. 가르쳐도 또 까먹고 또 가르쳐도 다른 걸 치고 있다. 그녀를 가르치는 데는 다른 사람보다도 더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녀를 가르치면서 내가 변해갔다. 그토록 어렵게 느껴지던 그녀의 어눌한 말투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빗나가는 그녀의 시선 사이에 내 시선을 고정시키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그녀가 다른 곳을 바라보며 나에게 말을 걸어도 이젠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서 내가 가졌던 그녀에 대한 편견 또한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물론 6개월이 지난 지금 그녀는 여전히 바이엘 상권 앞부분에서 머물고 있지만 그녀는 배우는 그 시간을 아주 소중히 생각한다.
가끔 연습 제대로 안 한다고 혼내는 나에게 자기는 다른 사람처럼 잘 칠 수가 없다고 이해해 달라고 소심하게 메시지를 보내는 그녀, 지금도 날 만나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반갑게 소리 지르며 다가와 날 꽉 안고 인사하는 부담스러운 그녀이지만 이제는 그 모습이 사랑스럽기 까지만 하다. 그런 쏘나를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이 어쩌면 그녀에게 보다 나에게 더 큰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에게 단순한 피아노를 가르쳐 주지만 난 그녀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과 천천히 가는 인생을 배우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