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 수록 더 아름답기

진정한 미를 준비하면서

by 모두미

난 남자 연예인 보다 여자 연예인을 더 좋아한다.

아름다운 미모를 뽐내는 여배우들의 사진을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다.

어쩌면 그들 처럼 아름다워 지고 싶다는 내면 속 깊은 소망이 나의 시선을 그들에게 멈추게 하는건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6학년

처음으로 증명사진을 찍었었다. 중학교 입학 원서에 필요하다고 해서 사진관에서 정자세로 앉아서 찍은 사진.

사진관에서 6장의 증명사진을 받아 오던 날. 난 그날 처음으로 나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었다.

내 눈이 심하게 짝눈이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외모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던 어린 나이였고 디지털 사진기도 없었던 시절이였기 때문에 내 얼굴만 제대로 찍어 본 적이 없었다. 요즘 처럼 자주 셀카를 찍어댔더라면 좀더 차분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왼쪽에만 크게 있는 쌍커풀이 원망 스러울 정도로 컸고 오른쪽 눈은 그에 비해 너무 작았다.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던 내 첫 증명사진을 그렇게 중학교 원서로 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기숙사에 살 때도 나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한쪽 눈에 쌍커풀을 만드냐 였다.

고마운 기숙사 친구들이 가르쳐 주는 방법대로

화장품 가게에서 파는 쌍커풀 스티커를 붙이고 자기도 하고

연필로 계속 자국을 내서 쌍커풀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의 정성에 하늘이 응답한 것일까?

나머지 한쪽 바로 오른 쪽 눈에 쌍커풀이 생겼다.

그리고 몇일 뒤 같은 반 남학생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해옥아 너는 눈이 참 예쁘구나."

비록 그 아이와 내가 썸을 타는 그런 관계도 아니었을 뿐더러

아마 그 아이는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할테지만

나는 너무 행복했다.

'아!~~~ 드디어 이제는 내 눈이 짝눈이 아니구나."


하지만 밤 12시가 지나면 제 모습으로 돌아가던 신데렐라 처럼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쌍커풀이 사라질 때가 있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일어나서 수업 중간에도 자기 전에도

손으로 오른쪽 눈의 쌍커풀 자리를 다시 잡아 주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까지 졸업했다.

그리고 운명의 사람을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식 바로 전 날

그날 역시 내가 가장 염려 하던 것은 바로 오른쪽 쌍커풀이 눈치 없이 결혼식날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였다.

세상에서 가장 예뻐야 하는 바로 그날 내 눈이 짝눈이 되어 버린다면......

상상만해도 끔찍했다.

그래서 자기 전 중학교 이후로 붙이지 않았던 쌍커풀 스티커를 붙이고 잠을 청했다. 내일 하루 종일 내 쌍커풀에 아무런 문제가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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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신부화장을 하러 가던 나는 너무 강력했던 쌍커풀 스티커의 끈적거림 때문에 눈을 제대로 깜빡 거리지 못할 정도였다.

역시나 전문가는 곧바로 나의 상태를 알아봤다.

신부 화장 실장님이 내 눈을 보더니

"신부님. 혹시 어제 눈에 뭐 붙이 셨어요? 이 끈적끈적한거 때문에 눈화장이 잘 안되네요."

아~ 쥐 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 바쁜 순간에 내 짝눈에 대한 긴 이야기를 할 수 도 없었고

쌍커풀 스티커를 붙였다고 이야기 하기엔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요. 나 짝눈이에요. 나 평생 이렇게 살아왔어요. 그래도 결혼식날은 짝눈이 되면 안되잖아요.'

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그저 담담히 신부 화장을 받았다.


그 실장님의 전문가적 손길로 결혼식 동안 아무도 나의 풀어진 쌍커풀을 알아 보지 못했다.

물론 누구도 그렇게 자세히 나의 얼굴을 뜯어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나는 36살의 두 아이를 가진 엄마이자 10년차 아내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원래 있던 쌍커풀 까지 사라지면서 나의 힘들었던 쌍커풀과의 전쟁도 사라졌다.

차라리 쌍커풀이 둘 다 없으니 더 편했다. 이래서 무소유가 진리인지 모른다.


이제는 쌍커풀 뿐만 아니라 나의 얼굴도 피부도 변하고 있다.

인도에 살다 보니 원래 까맣던 피부가 흑진주 처럼 까매져 버렸고 뜨거운 태양빛에 자주 노출되다 보니

피부도 거칠어졌다. 한국에 나가 비싼 피부과를 줄기차게 다녀도 회복이 될 까 싶을 정도이다.

어쩌면 이제는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나의 피부도 나의 젊음도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보톡스를 맞으며 마사지샵에 갈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모를까?

나이가 드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진리이다.

BRAND_BIO_Bio-Shorts_Mother-Teresa-Mini-Biography_0_172237_SF_HD_768x432-16x9.jpg 그녀는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R_4cbc8e8e93645.jpg 주름진 그녀의 모습이 더 아름다웠던 이유

그러면서 나의 미래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십, 오십대가 지나면서 내가 보일 수 있는 나의 이미지가 어떤 것이 있을까?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이라도 나이가 들면 그 나이를 숨길수가 없는 법.

내 사라진 쌍커풀들만 아쉬워 한다면 내 삶은 그저 쌍커풀을 잃은 미를 잃은 불쌍한 삶이 될것이다.


그래서 난 새로운 이미지를 넣기로 했다.

내 얼굴에서 나오는 표정.

내가 하는 일들에서 나오는 만족감.

나만이 아닌 남을 위해 무엇인가 도움을 준 후 얻는 행복감.

이런 것들로 내 얼굴과 표정을 꾸미기로 했다.

이제는 쌍커풀 스티커도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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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난 인도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글을 쓴다.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리코더를 가르칠 때에는

나에게서 행복한 선생의 미소가 나오고

새벽같이 책상에 앉아 글을 쓸 때면 나에게서

행복한 작가의 미소가 나온다.


그리고 그런 미소들이 내 얼굴에 조금씩 조금씩 뭍어나면서 나중에는

신부 화장 보다도 더 두꺼운 지우지지 않는 행복한 얼굴이 될 것이다.


아.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다. 나이들어서도 젊은이들이 부러워 할 만한 그런 얼굴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그러고 보면 인생은 참 공평하다. 우리 모두에게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시간들을 충분히 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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