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배워 나가듯이 배우는 삶
도레미도 솔~~~
파레파미 ~~~~
7명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 앉았다. 초등학교 4학년 부터 고3까지. 오늘은 남학생들반이다.
덩치 큰 학생들이 작은 키보드 앞에 앉아서 바이엘을 치고 있다.
벌써 30년 된 내 바이엘 책을 복사해서 나눠 주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의 피아노 선생님께서 써 놓으셨던 연필 자국들이 그대로 복사 되었다. 그리고 삐뚤삐뚤 나의 글씨도 간간히 보인다.
손가락을 제대로 구부리지 않으면 가지고 있던 연필로 내 손등을 탁탁 치셨던 선생님은 성격이 조금 날카롭기는 했지만 굽슬 거리며 내려오던 머리카락 처럼 아주 우아한 분이셨다.
집에서 한 50미터만 걸어가면 나오는 피아노 학원.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 네 다섯대의 피아노를 둔 피아노 교습소가 있었다.
매일 피아노 학원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거실에 꼽아 놓은 만화책들을 읽으면서 키득거리기도 하고 피아노 방에서 연습하다 졸려서 자기도 하고......
그렇게 내 초등학교 6년의 기억은 거의 피아노와 함께 있었다.
중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해옥아. 객관적으로 피아노를 전공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힘들단다. 그러니까 피아노는 여기까지 배우자."
난 알았다. 우리가족은 음악을 전공 시킬 만큼 부유하지 않았다는 것과 내게 피아노를 전공할 만큼의 천재성은 없다는 것과 어려운 악보를 치기에는 내 손이 너무 짧았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피아노학원을 그만뒀다.
하지만 피아노는 내 마음에 있었다.
피아노가 없던 시절 저녁이면 멜로디언으로 피아노 연습을 했다. 무언의 외침이었다.
'어머니! 저는 멜로디언으로도 이렇게 열심히 연습합니다. 피아노 좀 사주세요.'
딸의 마음을 다 아셨던지 어머니는 몇년간 모은 돈으로 중3때 피아노를 사주셨다.
그리고 피아노와 함께 사춘기를 보냈다.
짝사랑을 할 때도, 공부가 잘 되지 않을 때도 나는 피아노를 쳤다. 비록 피아노 전공은 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내 보물 1호는 피아노이다.
그렇게 끈질기게 지금까지도 피아노를 잡고 있다.
비록 전공자는 아니지만 난 여전히 피아노를 사랑하고 피아노와 나는 한 짝궁이 되어서 인도 친구들을 만난다. 이 까만 피부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심어주는 일을 한다. 말똥말똥한 눈을 가지고 우리 음악 교실에 오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친다.
항상 아이들에게 이야기 하는것이 있다.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이 피아노를 가르쳐 주는 것은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야. 너희들이 기쁠 때나 힘이 들때나 언제든지 피아노를 치며 너희들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 그럼 그 순간들이 아주 로맨틱 하게 느껴진단다. 그리고 선생님이 너희를 가르치듯이 너희도 나중에 다른 아이들을 가르쳐 주어야해. 그게 선생님이 바라는 거란다."
가난도 어려운 상황도 음악으로 이겨내기를 바라며 아이들을 만난다. 그리고 아이들의 삶이 음악으로 인해 조금 더 풍요로워 지기를 기도한다.
꿈 꾼다는 것. 무언가를 사랑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꿈을 나눈다는 것.
행복을 두 배로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