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잘해?!

가까이 있어서 느끼지 못했던 순간들

by 모두미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잔뜩 쌓여있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뿌연 하늘이 비라도 내리려나?”

혼잣말을 하며 그렇게 부엌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뒤뜰을 보고 있었다.

얼룩덜룩 지저분해 져 있던 그릇들을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가지런히 정리해 두었다. 그리고 다시 밖을 쳐다봤다.


조용한 아침. 어제 저녁 때 널어놓았던 빨래들이 살랑 살랑 춤을 춘다.

바람이다! 얼마 만에 보는 바람인지. 너무 반가운 마음에 뒷문을 열고 뒤뜰로 나갔다. 바람과 함께 이슬비까지 내린다. 5개월 만에 보는 비.

땅도 오랜 만에 찾아온 비가 반가웠을거다

인도도 나라가 크기 때문에 지역마다 계절이 다르다. 내가 사는 웨스트 뱅갈 주에 작은 팔라카타 마을은 10월부터 비가 오지 않는다. 이곳의 겨울은 눈도 없지만 비도 그리고 바람도 없다. 저녁 일찍부터 시작되는 안개가 다이다. 자욱한 안개들이 땅을 촉촉하게 적신다. 그러다 보니 5개월 만에 처음 보는 바람이, 이슬비가 이리도 반가울 수가 없다.

빗방울 하나 하나가 너무 반가웠다

처마 밑으로 대롱대롱 달려 있는 빗방울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그리고 가까이 가려면 바닥으로 떨어져 모습을 감춰 버린다.

아주 잠깐이었다. 30분도 안되게 소리 소문 없이 내리는 이 첫 비가, 빨래 줄에 걸려 있는 아이들의 교복을 춤추게 하던 이 첫 바람이 오늘은 이리도 반가울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대개 있을 때 그 소중함을 모른다.

가지고 있던 것들이, 함께 있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느낀다.

우기 철이 되면 ‘제발 이 비 좀 멈춰라’하고 속으로 바라던 내가 몇 달 만에 본 이슬비에 반가워 뒤뜰로 뛰어나가는 모습처럼 말이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닌가 보다.

어쩌면 진짜 인연의 소중함, 삶의 소중함을 경험한 어느 한 사람이 남긴 말일지도 모른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5년이 되었을 때, 두 아이를 기르느라 정신없이 지내던 그 때.

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아이와 남편을 두고 암에 걸려 죽어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였다.

한 시간이 넘는 그 다큐멘터리가 끝난 후에 나는 한참을 울었다.

그때 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이별.

어쩌면 언제 이별하게 될지 모르는 우리의 인생인데 매일 매일을 너무 짜증내면서 지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에게 서운한 것만 생각하며 불행해 했고, 아이들 내 기준에 따라오지 않는다고 혼내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난 간접이별을 경험했다. 그리고 매 순간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를 깨달았다.

우린 항상 일어나는 일들은, 그리고 항상 같이 지내는 사람들은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간다.

그래서인지 더 힘들고, 짜증나고 바쁘기만 한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한탄하기까지 한다.

지나치기 쉬운 그 행복한 순간들을 다시 쳐다본다.

하지만 조금만 더 눈을 크게 떠 본다면 지금 이 순간들이, 소중한 시간들임을 알게 될 것이다.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의 소리, 아침 일찍 밥을 할 때 듣는 압력 밥솥 소리, 그리고 밤새 잠을 설치게 만드는 남편의 그 코고는 소리까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장 행복한 장면이라는 것을 말이다.

20170224091513.JPG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 온다.

그러고 보니 창문 밖으로 서 있는 앙상한 겨울나무도, 시끄럽기만 했던 개 짖는 소리들도, 그리고 우리 집에 와서 야채를 훔쳐 먹는 저 염소들까지도 모두가 소중해 보인다.

이 모든 것들 역시 지나고 나면 소중한 추억의 앨범 속으로 자리 잡고 있겠지.

오늘은 좀 더 소중한 장면들을 내 마음 속에 많이 찍어 두어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