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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Apr 23. 2017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집

변화가 좋은 내가 변화하지 않는 것을 그리워 하게 됐다.

나는 집 구조를 바꾸는 것을 좋아한다. 책상에서부터 피아노까지 시간만 나면 위치를 바꿔서 분위기를 달리 한다. 오래 된 물건들은 가차 없이 버리려고 노력한다. 난 그런 변화가 좋다.      


빽빽하게 주차 되어 있는 차들 사이에 간신히 우리 차를 주차했다.

집이다. 일 년 만에 온 친정 집.

익숙한 계단을 올라가면 승강기가 보인다. 열 명도 타기 힘들어 보이는 작은 승강기를 타고 7층에서 내려 몇 계단만 올라가면 넓은 복도가 나온다.

긴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 집들. 그 중간에 엄마 아빠가 사신다.

문을 열자마자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난다.

“아이고, 해옥이 왔나. 우리 손자들도 많이 컸네.”

“울 엄니, 잘 계셨니껴?” 어설프게 사투리를 써가며 엄마를 꼬옥 안았다.

“자네도 왔는가?” 뒤에서 익숙한 아빠의 환한 얼굴이 보인다.

엄마는 일 년 만에 온 딸을 위해 맛있는 된장국을 준비하셨다.

“와. 우리 엄마 된장국 보소. 완전 두부로 가득 찼네.”

“니가 두부 좋아 하잖나. 인도 있으면서 두부가 얼마나 먹고 싶었겠노. 식품 가게서 사온 두부 고민하다가 두 모 다 넣었다.”

“와. 역시 울 엄마. 근데 진짜 인도에서 두부 만드는 것도 너무 복잡해서 자주 못해먹겠더라고.”

난 먼저 두부를 하나 집어 먹었다. 역시 엄마 맛이다.     

두부로 넘쳐나는 엄마의 된장국

난 어렸을 때 두부를 좋아했다. 두부찌개, 두부 부침, 뭐든지 두부가 들어가면 그날 반찬은 충분했다. 그래서 항상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딸은 커서 두부 공장 사장이랑 결혼시켜야 하겠네. 이렇게 두부를 잘 먹으니.”

그러던 내가 결혼을 너무 잘해서 두부도 못 먹는 인도에 살고 있으니. 그래서 인지 엄마는 내가 한국에 나올 때면 꼭 두부파티를 준비해 놓으신다.

아빠가 아이들을 위해 상을 펴셨다.

동그란 자개 상.

이 상은 특별한 날만 펴졌다. 손님이 오던 날이나 친척들이 모이던 날. 그렇게 멋지고 특별해 보이던 이 상도 이제는 나이를 속일 수 없는지 아주 오래 되 보였다.

“아빠. 와 이 상 진짜 오래 된 거죠. 몇 년 된 거예요?”

삼십 년이 넘게 우리와 공존 한 자개상

“이거? 글쎄 한 35년 됐지.”

35년. 내 동생 나이다. 오래 됐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35년이라.

나와 내 동생이 어렸을 적부터 결혼을 한 지금까지 우리의 모습을 다 지켜 본 낡은 자개 상.

몇 년 전 내가 결혼 할 때 구입한 새 상이 있는데도 엄마는 이 상이 편하다며 낡은 자개상만 쓴다.

“아빠. 그럼 이 서랍은요? 이거 우리 어렸을 때 붙여놓은 강시 스티커도 아직 붙어 있네.”

“그 서랍은 보자...... 23년 정도 됐지.”  

역시 우리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항상 집에 와도 같은 모습이어서 그러려니 했었는데 오늘은 왠지 집에 있는 물건들이 특별해 보였다.

“아빠, 이 다리미는요?”

“다리미? 야. 그 다리미는 벌써 32년 됐지.” 아빠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다리미는 아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오랜 시절을 양복점을 하면서 사용했던 그 다리미. 그래서 저 오래 된 다리미를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냉장고도, 아직까지 라디오는 된다고 자랑하시는 아빠의 카세트플레이어도, 모두 이삼십년이 넘은 것들이었다.

“야. 우리 집 완전 골동품 가게네요.”


 항상 그렇듯 집은 그대다. 엄마의 화장대도 옷장도 옛날 그 모습 그대로다.

엄마 아빠는 지겨운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낡았다고 버릴 줄도 모르고 가구를 좀 옮겨가며 기분 전환시킬 줄도 모른다. 중학교 때 외박을 나와 엄마 화장대에 있는 화장품들을 몰래 만져 보던 그 때처럼, 엄마의 화장대는 그렇게 정돈되지 않은 채 같은 자리에 있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본다면 촌스러운 정말 촌스러운 사람들일 것이다.

“야. 이 장판이랑, 벽지도 바꾸긴 해야 하는데. 참 우리처럼 사는 사람도 없을 끼다.”

벌써 몇 년 째 듣는 말인지 모른다. 엄마 아빠에게는 장판과 벽지를 바꾸는 것이 사치였을지 모른다. 매일 힘들게 번 돈으로 손자들 선물이라도 하나 더 사주지 하는 마음이었을까.  

누렇게 색깔 바랜 장판도, 곰팡이에 떨어져 나간 벽지도, 엄마 아빠의 마음을 말해주는 것 만 같다.     


일 년에 몇 번이고 변하는 우리 집보다, 깔끔하게 정돈 되어 있는 그 누구의 집 보다 난 엄마 아빠의 집이 좋다.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닥다리 센스 없는 집이어도 좋다.

새벽 밥 먹고 일하러 나가시는 아빠의 땀 냄새가 배어 있는 집, 하루 종일 앉아서 닭발을 손질하시느라 저녁이면 피곤에 지쳐 잠이 드는 엄마의 수고가 그대로 배어 있는 집.

집안 곳곳에 숨어 있는 오래 된 물건들이 꼭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만 같아서 난 그 촌스러움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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