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삶과 죽음에 관한 에세이 '죽어도 살자'
인생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살기로 했다.
나 또한 언젠가 죽겠지만, 살기로 했다.
나 자신을 죽일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나를 낳아 위대한 사랑으로 키워 주신 부모님을 위해서.
언제나 나를 믿는 가족들을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살기로 했다.
아우레오 배, 죽어도 살자, 여는 글
저자는 오랜 기간 죽음을 생각해왔다 했습니다. 다만 미처 끝내지 못한 프로젝트의 마무리 때문에, 이것만 끝나면, 하며 죽음의 순간을 유예하였을 뿐 삶을 끝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요.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지인의 죽음, 그 후 주변인들에게 휘몰아친 흔적과 고통을 목도하고는 살기로 합니다. 가족과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을 위해서. 그를 사랑해 준 모두를 위해서. 그리고 적어 내려 간 죽음과 삶에 대한 글 모음이 에세이집 '죽어도 살자'입니다.
저자는 죽고 싶은 사람인 동시에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던 할머니의 죽음 뒤에 남겨진 외로운 소년, 함께 전시회를 기획하고 준비하던 지인의 죽음 뒤에 남겨져 코로나로 텅 빈 전시장을 빈소 지키 듯 지킨 작가... 아우레오 배. 그의, 작가의 선택이 '삶'이었기에, 죽음에 대한 에세이가 종국에는 생에 대한 에세이가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작가에게 유독 고마웠던 이유는, '죽으면 안 되는 이유'를 늘어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어가 무엇이든 간에 이미 "안되는 이유"와 "못하는 이유"가 넘쳐나 넌덜머리가 나 있는 요즘이었거든요. 그는 되려 살아온 이야기와 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죽고 싶은 사람은 그 누구보다 제대로 살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어요.
그렇게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습니다. 표지 이미지로 '우로보로스' 즉 자신의 꼬리를 주동이에 물고 있는 뱀의 형상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네요. 여는 글에서 저자 아우레오 배가 밝힌 재생과 영원, 자기 의존의 상징 외에도 우로보로스는 변화이자 완전함 그리고 현자의 돌을 상징합니다. 삶의 궤도 밖으로 투신하지 않는 한, 실수와 결핍, 고통을 당신의 힘과 매력으로 체화시킬 기회는 여전한 겁니다. 돌덩이와 납덩이를 금으로 변화시키는 연금술의 비기, 현자의 돌. 현자의 돌은 물질일 수도, 방정식일 수도 있습니다. 이 에세이집은 저자가 간직하고 있다 건네는 현자의 돌입니다. "죽어도 살자, 우리."라며 저자가 늘 말아 쥐고 있던 주먹을 펴 체온이 남아 아직 따뜻한 돌멩이 하나를 턱, 손에 쥐여주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저자는 결핍과 상실, 실수와 실패의 쓸모를 이야기합니다. 살기 위한 방법을 전합니다. 모자람이 인간을 아름답게 하고, 아픔이 그를 더욱 인간답게 하며, 불편함이 생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요. 힘든 경험은 이를 경험한 이의 공감 능력을 향상시켜 타인의 마음을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니, 결국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추의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수긍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자유로움이 찾아오고 오히려 선택의 영역이 넓어진다고요. 그렇게 각자의 고유한 개성을 갖춰가며 저마다의 영혼에 새겨진 소망을 따라 살아나갑니다.
"인간이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깨달음은 마음을 굉장히 자유롭게 합니다. 모른다고 생각할 것도 없어지고, 안다고 생각할 것도 없어지지요. 무엇이든 그냥 해 보게 됩니다. 자연의 진리는 몇 가지 없고, 그런 자연의 법칙은 모든 것에 적용되니까요. 하고 싶으신 일이 있으면, 지금 하세요. 일단 하기 시작하면 배우게 됩니다.(61p.)"
역설적 관점으로 불편함을 재조명하는 것이 생을 빛나게 하는 연금술의 제1 방정식이라면 제2 방정식은 '숨은 의미 찾기'입니다. 저자는 과연 예술가여서, 인생의 어떤 요소도 허투루 대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현상으로 여기면 이유를 찾게 되고, 현상의 원인을 알면 그 의미 또한 달라지지요. 의미에 따라 대상의 값어치는 변합니다. 맛이 아닌 번거로운 그 과정이 목적이라 모닝커피를 굳이 드립으로 내리는 제게 그 일련의 과정은 모닝커피를 준비하는 시간 이상의, 아주 만족스럽게 보낸 하루와도 맞먹는 가치를 지니는 것처럼요.
ж생의 연금술 _제1 방정식
"'망가진다'라는 건 관점의 차이입니다. 어떤 그림을 누군가는 낙서로 보고, 다른 이는 명화로 봅니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까요." (64p.)
"실수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함이 부끄러운 일이지요." (65p.)
"정말로 죽고 싶은 사람은 정말로 살고 싶은 사람이에요." (72p.)
"우울감과 우울증을 경험하며 저와 닮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느끼는 사람들이에요."(114p.)
"잠은 불멸의 초능력입니다. 만족하는 삶은 적절한 휴식으로 얻은 가장 맑은 상태로 삶에 임하여 이룰 수 있습니다." (189p.)
"잠은 불가피한 시간 낭비가 아니라, 나를 재생하는 초능력입니다. 아픔과 슬픔과 힘듦도 시간과 함께 줄어듭니다. 그래서 버티면 이깁니다."(190p.)
ж생의 연금술 _제2 방정식
"영어를 할 줄 알게 되며 깨달은 점은, 인생은 노력이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점입니다." (87.)
"공감은 당신과 나의 삶을 살 만하게 해요." (113p.)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을 좋은 의도로 대합니다. 때때로 이유 없이 불친절한 사람은 그 사람만의 개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내가 화라는 독소를 내 몸 안에 생성할 필요까진 없게 되지요." (162p.)
"세상이 나에게 압력을 가했을 때 그 압력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다시 회복할 수 있느냐 하는 탄성은 나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185p.)
우주와 같은 사랑을 베풀어주시던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사진 찍기가 취미이던 소년이 어느 날 찍어준 사진이 영정사진이 됩니다. 저자에게 이는 강렬한 경험이 되어, 인물사진으로 작가 생활과 본격적인 커리어에 돌입하지요. 책에서 저자는 그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창조적 에너지의 뿌리임을 고백해요. 그 사랑이 뿌리가 되어 그는 독선이 아닌 더불어 살기를, 우주의 일부로서 사랑을 나누는 방식으로 존재하기를 원하게 된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요. 그의 삶과 작품들을 통해 할머니의 사랑과 존재는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군요.
마이클 온다체는 그의 장편소설 고양이 테이블에서 태피스트리의 뒷면을 뒤집어 뒷면의 무늬가 더 아름답고 색감이 강렬함을 보이며 깊이와 진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힘은 배면에 존재하죠." "아마도 백 명 이상의 여자들이 일 년 동안 이 작업에 매달렸을 거예요. 그들은 이 일을 할 기회를 잡기 위해 싸웠죠. 이 일로 먹고살 수 있었을 테니까. 이 작품은 1530년대의 그들을 지켜주었어요. 플랑드르의 겨울이 지나가는 동안에요. 이 감상적인 작품에 깊이와 진실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실이죠." (마이클 온다체, 고양이 테이블, 다산책방, 326p.)
작가가 이야기하는 우주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방법은, 환경의 오염을 최소화하는 것 외에도 '같이 먹고사는 삶'에 있습니다. 나의 활동과 생산성이 타인에게도 먹고살 길을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거지요. 저자는 일찌감치 사업을 통해 고용주가 되고,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이 가정을 꾸릴 수 있게끔 도움을 주는 일을 했습니다. 또한 그는 정부에게 지원만 받는 예술가는 지양하고자 합니다. 좋은 상품이 많이 팔리는 것이 아니라 많이 팔리는 것이 좋은 상품이라고, 좋은 성과를 통해 세금을 많이 내고 싶다고 이야기하지요. 저러한 기업, 예술품에는 진정성과 깊이라는 '힘'이 깃들 것입니다. 이렇듯 저자는 내가 사는 이야기에서 우리를 살리는 이야기로 자연스레 영역을 넓혀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남은 이의 인생을 바꿔 놓습니다. 어찌 보면 사람은 하나의 우주인 것 같아요. 사람이 없어지면 세상이 없어진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아이는 놀이를 통해 자신만의 우주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지성은 상상력이니까요. 사랑을 통해 인간은 타인에 공감하는 도덕성과 삶을 살아갈 자신감을 얻습니다.
-아우레오 배 (25p. 글자체와 색으로 강조 표시는 반짝풍경이 함.)
날카롭고 비판적인 사람도 죽음을 경험하고 돌아오면 친절한 사람이 됩니다. 죽음이라는 같은 종착역을 향해 가는 우리는 삶이라는 여정을 함께 하는 여행객이니까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린 결국 죽는데, 서로 친절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아우레오 배 (71p. 글자체와 색으로 강조표시는 반짝풍경이 함.)
Pain and suffering are always inevitable for a large intelligence and a deep heart.
The really great men, I think, must have great sadness on earth.
-Fyodor Dostoevsky(114p.)
Pepole cry, not because they're weak. It is because they've been strong for too long.
-Johnny Depp (116p.)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52p.)
더 이상 괴짜인 나 자신이 부끄럽지도 사람들로부터 숨고 싶지도 않아요. 연약함이 아니라 그저 내 모습일 뿐이라 털어버리고 나니, 이제 살 생각이 납니다. 진정 마음이 너무 닮아 물 만난 고기 마냥 희열 하며 친구와 대화로 밤 지새운 듯한 연말연시였습니다. 책을 받아 들고 선 채로 서성이며 한차례 단숨에 읽어내리고, 드러누워 다시 읽고 들고 다니며 또 읽고 실컷 읽은 후에야 이렇게 작가의 에세이집을 벗이 보낸 편지로 여겨 서평으로 벗에게 답장을 씁니다 :)
- 본 포스팅은 바른북스로부터 책을 지원받긴 했지만, 이 책이 좋아 순전히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로 직접 작성된 정성 어린 포스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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