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실존하며 살아가는 것

[책, 영화] 테드 창 <숨> 기예르모 델 토로 <프랑켄슈타인> (강추)

by 리뷰왕정리뷰


정신과 의사로 환자를 보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어쩌면 '왜 사나요?'가 아닐까 싶다.

- 도대체 왜 사나요?

- 제가 왜 살아야 하나요?

- 선생님은 왜 사세요? (그러게요ㅠㅠ)

- 제 인생이 이토록 비참한데, 그럼에도 제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요? (...)



나 또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너무도 찾고 싶어서 오래도록 헤매었고, 어쩌면 학문의 길에 발을 담근 이유 중 하나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원해서도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을 살린다는 슬로건을 내 건 '의학' 이기에 사람을 어떻게 살리는지는 수많은 답을 제시해 주지만, '왜 살리는지'에 대한 답은 쉽사리 보지 못했다. 아무리 정신과 서적을 뒤져봐도 내 마음에 와닿는 답은 없었다.

사실 애초에 의학, 그중에서도 정신의학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는 학문이 아니었다.

정신과 또한 일단 살리고 보는 것에 집중하는 학문이었으니까.

되려 내가 느끼기에 가장 나의 마음에 '정답! 딩동댕'을 외치게 해주었던 것은 니체의 실존주의였다.


'그냥 살아. 누구보다 강한 확신을 가지고. 오늘 이 하루가 영원히 반복된다고 할지라도 환하게 미소 지으며 살아.'


처음에는 뭐지? 싶었다. 뭔 헛소리니?

인터넷에서 '왜 사는 걸까' 묻는 사람에게 '그럼 죽어'라고 유치하면서도 지독한 농담이자 냉소를 던지는 사람들과 뭐가 다르지?

당연하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차이를 이해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 아래부터는 테드 창의 소설 <숨> 그리고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테드 창의 SF 소설 <숨>은 단편소설집이다.

모든 단편소설들이 보석같이 빛나기에 매우 매우 강추하는 소설이다 (나의 별점 또한 4.5/5).

삶의 이유와 실존주의라는 측면에서 글을 이어가 본다면 <숨>에 실린 마지막 단편소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만약에'라는 질문은 우리를 즐겁게 하지만 때로는 끝없는 괴로움에 빠뜨리기도 한다.

만약에 그때 내가 비트코인을 샀더라면...

만약에 내가 이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했더라면...

만약에 그때 내가 그 사람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우리의 상상 속에서 수많은 평행우주가 탄생한다면 어떨까?

소설에서는 그렇게 탄생한 평행우주와 우리가 소통을 하는 재미난 상상을 얹는다.


어떤 이들은 다른 평행우주의 벼락부자가 된 나와 소통하며 재미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들을 보며 우울에 빠진다.

기업가나 연예인 같은 사람을 볼 때 우리는 좌절감이나 우울에 빠지진 않지만, 부자가 된 '나'는 그와는 다른 종류의 박탈감을 줄 수 있다.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저렇게 부자가 될 수 있었단 말이야?

당연히 들 수 있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이 단편소설을 다 읽고 나면 종반에 우리는 알게 된다. 그 모든 선택의 합이 나였다는 것을. 내가 순간순간했던 자그마한 선한 선택, 지혜로운 선택들이 모여 나를 하나의 우주로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영화 <에브리씽,에브리웨어,올앳원스>가 생각났다. 내가 매일매일 길에서 쓰레기를 줍고, 규칙과 법을 준수했다면, 연쇄살인마가 되어있는 나의 우주는 지금 내가 있는 우주에서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으리라.



어찌 보면 니체가 이야기하는 같은 삶을 무한하게 반복하는 무한 회귀가 일종의 사고실험이듯이, 평행우주에 대한 사고 실험도 우리에게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또한 너의 삶이고, 너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살아가라.



실존주의 이야기와는 약간은 별개로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에서 다루는 기억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 또한 흥미로웠다.


우리가 모든 과거의 진실을 완전 100% 저장된 채로 목도하게 된다면 어떨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스스로의 경험과 기억을 왜곡하며 살아왔는지 목도하게 될 것이다.


최근 정신분석을 공부하며 본 이론에서도 '중요한 건 환자가 하는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순간, 여기에서, 나에게, 그 경험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조화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에 집중하라고 한다. 정신분석 창시자 프로이트 때부터 그는 내담자의 기억은 절대로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고, 그걸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으며, 그 안에 담겨있는 내담자의 감정을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할지인데 과연 우리가 스스로 왜곡해 왔던 과거의 진실을 그대로 바라봐야만 한다면 어떨까?

소설에서 나온 표현 중 용서는 망각과 맞닿아있다는 내용이 크게 기억에 남는다.

혼자 떠올린 버전으로는 어쩌면 용서와 망각은 우리가 불행과 싸우는 가장 큰 무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과거의 기억에서 불행이 찾아오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 형제가 아닐까.

우리는 어쩌면 이미 그렇게 하루하루 과거를 잊어가고 오늘의 선택을 쌓아가며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고통이 반복될지라도 살아가야 하는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비록 어려운 일이겠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아무리 고통받아도 죽지 않는, 끝나지 않는 스스로의 삶을 저주하고 절규한다. 하지만 빅터는 이야기한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참 말은 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하루 종일 진료실에서 하는 일도 어쩔 때는 빅터가 전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의 일종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만한 호소력도 없고, 절절함이 없어서 항상 벽에 울리는 메아리처럼 내 마음이 좀처럼 닿지 않는 것 같다고 자주 느낀다.


다음에 환자의 '왜 살아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답할 때는 이렇게 해봐야겠다.

'니체가 주절주절 영원회귀 어쩌고저쩌고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물이 만약 있다면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데 어쩌고저쩌고'

말도 안 되겠죠? ^^ 오늘도 그냥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는다.....

좋은 메시지가 갖는 힘은 영원한데 나는 그 메시지를 담을 그릇이 못 되는구나~


<숨> 나의 별점: 4.5/5

이유: 살면서 본 SF 중 가장 완벽에 가까운 작품들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구조의 치밀성, 주제의식의 전달력과 호소력. 완벽하다. 5점이 아닌 이유는? 내 생각이 바뀐 정도는 아니라서~ 내 생각이 바뀐 작품에 나는 5점을 주는데 숨의 주제의식이나 이런 부분들은 원래 생각하던 것들이 많았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 나의 별점: 4/5

이유: 굉장한 연출.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을 보면서 연출에 압도당한다는 느낌을 받은 건 거의 처음이다. 오스카 아이작 배우도 너무 좋다. 자주 보고 싶어요 아죠씨!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나의 별점: 5/5

이유: 이 글은 해당 영화 리뷰가 아니었지만 단순히 이름이 나왔다는 이유로 다시 추천을 박고 가고 싶다. 그저 이 우주에 이런 영화가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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