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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May 26. 2023

설거지하지 않는다



첫 아이를 낳고 6년 간 전업주부로 . 아이를 키우려면 누군가는 집에 있어야 했고 나는 그게 남편이 아니라 나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나보다 돈을 더 많이 고 그나마 살림 솜씨가 나으니 그게 최선인 줄 알았다. 결혼하면 일을 그만두고 출산하면 육아는 여자 몫이 되는  세태를 고민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결정 간과한 부분이 많. 가사노동 출퇴근이 없 월급 없으며 휴가조차 없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경력이 되지 않데다 재취업이 어다.


알아채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엔 영아반은 드물었고 4살이 되야 어린이 집에 다닐 수 있었다. 아이가 린이 집 수 있게 되 취업할 계획이었는데 예정 없는 둘째가 생겼. 시누이가 용꿈을 도 태몽 같다며 둘째 생긴 것이 아니었을 때 '아니에요' 했더니 '좋은 꿈 가져가요' 하길래 웃으며 '까요' 천 원을 다. 장난이었다. 그런 걸 누가 믿나. 그런데 진짜 둘째가 생겼다 말씀. 믿거나 말거나다. 


둘째가 돌이 지을 때 남편이 부산으로 발령받을 기회가 났다. 남편은 서울에 있고 싶어했지만 나는 친정이 있는 부산으로 가자고 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에서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며 일하긴 불가능 보였기 때문이다. 사노동은 가구원의 변화 없이 총량이 줄어들지 않는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 해야 하고 에게 누군가는 엄마였다. 부산으로 이사하고 친정 집 두층 위에 살림을 풀었다. 나는 엄마의 노동을 빌려 쓰고서야 비로서 일할 수 있었다.


렇게 20년 넘게 흘렀다. 그사이 엄마가 아파 살림은 다시 내 차지가 되고 12년간 간병하고 아이 키우며 일했다. 침을 차리고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가면 청소를 하고 엄마를 보살피고 그제야 나도 출근했다. 퇴근하면 저녁을 짓고 엄마를 살폈다. 사이사이 빨래와 청소를 했고 엄마가 입원하면 병원에서 먹고 잤다.


 엄마는 3년 전 돌아가시고 남편은 8년 전 명예퇴직을 했다. 아이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간병할 엄마가 없고 남편은 출퇴근이 자유로워지고 아이들은 더 이상 어리지 않는데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가 없어 간병할 일은 없었지만 여전히 살림하고 일했다. 애들이 어려서 엄마가 아파서 남편이 바빠서 했던 일들 상황이 바꼈지만 여전히 작동했다. 식구들은 나만 보면 밥 달라하고 집안 먼지는 내 눈에만 보이고 집안 대소사는 내 손만 기다렸다. 주말에 친구를 만나는게 불편하 퇴근이 늦어지면 저녁 걱정을 했다. 20년 넘게 반복한 행동은 나와 가족들에게 각인되어 당연시 여겨지고 습관처럼 반복됐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1년이 지났을 때 나는  내 안의 길들여진 습관을 꾸기로 다. 가부장제에서 나고 자라며 보고 배운 관습. 습득된 가치들, 마와 아내로 살아오며 에 밴 습관들. 따뜻한 밥과 깨끗한 옷으로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증명하려는 버릇. 나는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건 아니지만 이제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식이요법으로 집에서 밥과 반찬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 이유가 사라지고 남편 퇴근시간이 나보다 빠르고 딸은 주거독립을 했기 때문이다.


습관의 단절은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돌아보자신을 새로운 모습으로 상상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집 상주인원은 넷이다. 아빠, 남편, 아들, 나. 요리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하되 청소는 남편이 빨래는 아빠가 맡기로 했다. 출근이 빠르고 퇴근이 늦는 아들은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와 주말 설겆이를 담당하기로 했다.  


나는 가사노동 분담이 투쟁이 가족 모두에게 당연시 되길 바랐다. 가장 강력한 지지자는 딸이었다. 방학이면 집에 와 잔소리를 했다. '아빤 너무 가부장적이야. 엄마가 밥을 하니까 청소는 아빠가 해야지. 어제 오빠가 했으니 오늘은 아빠가 설거지해야지.' 천 원짜리 꿈으로 얻은 딸이 어느새 천군만마가 됐다.


그렇게 2년이 넘은 지금 나는 설거지하지 않는다. 씽크대에 담긴 그릇을 보면 불쑥 닦고 싶지만 절댈ᆢ 하지 않는다. 좋은 식기 세척기가 얼마나 많은데 설겆이 하나 하지 않는게 대수냐 하겠지만 내게 이 다짐은 리추얼에 가깝. 리추얼은 습관과 비슷하지만 자신만의 의미를 만든다는 점서 다다. 다른 사람에겐 큰 의미가 없을지라도 자신에게 긍정적 감정 행복감을 주는 반복된 행동이다.


퇴근하면 옷을 갈아입고 손발만 씻은 뒤 바로 저녁을 차린다. 식사가 끝나면 모든 집안일에서 나를 끈다. 씻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대부분 독서지만 그시간은 나를 위해 사용한다. 거지하지 않는 것은 내가 가족을 뒷바라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존중받으며 살아가는 일원임을 느끼게 해 준다. 설거지라는 습관이 빠진 자리에 스스로를 돌보는 습관을 집어넣는다. 좋은 습관은 더 높은 가치를 향해 나가고 또 다른 좋은 습관을 부를 것이다. 나는 설거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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